<사사>
“자신의 신원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엔 우리 쪽, 변호사 증인 신문이다.
“저는 화성에 사는 257살 미란다라고 합니다. 재작년에 사서 아들 삼은 안드로이드 하나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사사와 사사진이 당신의 자택에서 묵은 적이 있습니까?”
“네. 사사의 우주선이 근처 블랙홀의 자기장에 영향을 받아 화성으로 불시착했고, 제가 레이더로 포착하여 그들이 소멸되기 전에 친절을 베풀었죠. 물론 이런 결과가 되리라고 상상도 못 했지만요.”
“그날의 일을 자세히 말해주세요.”
“사사가 우주 폭풍을 일으키면서 화성에 내려오자마자 거의 천년 만에 외계인을 본 화성녀들이 몰려들었어요. 그것들은 일명 ‘칠공주’라고 불리는 할마시들이에요.
판사님도 잘 알다시피, 요즘 화성은 금성이나 수성에 비해 관광지로서의 인기도 한참 떨어졌고.. 이 화성녀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 옛날 지구에 ‘찜질방’ 인가 뭐 그런 데서 하는 것처럼 머리에 수건이나 동여매고 자기네 비위에 안 맞는 동네 남자들에게 시비를 걸어서 분화구에 발바닥을 지지게 하면서 괴롭히거나 계란을 삶아라, 요리를 해라 시키면서 먹고 노는 것 밖에 없고ᆢ
매일 심심하다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는데, 갑자기 엄청 재미있는 일이 생겨버린 거죠.
사사네가 내 도움을 받아 공중 해자를 건너 내 성안에 들어오자마자, 철문이 닫히는 걸 보면서 그것들이 다짜고짜 저의 집으로 돌진했어요.
다행히 문은 닫았지만. 비행 블레이드를 타고 활공을 하면서 몰려와서는ᆢ 젊은 외계인하고 한번 놀아보자며 강화유리로 된 천장과 벽 밖에서 시멘트 돌조각들을 퍼부어대면서 위협했어요. 금방이라도 창문과 대문이 박살 날 것 같았죠.”
“그들과 충분한 대화를 해 보셨나요?”
“당연하죠. 대체 왜 이러느냐. 외계인을 함부로 대하면 화성 주정부 경찰이 당장 달려와서 너희를 명왕성에 있는 우주연방 감옥에 집어넣을 거다…
내가 소리를 그렇게 고래고래 질러댔는데도 대체 듣질 않았어요.
그들은 이 시골 행성에서 이백 년 넘게 지루함을 견디면서 살아온 할머니들이에요. 평생에 올까 말까 한 신기한 일이 생겼는데, 그냥 가겠어요?
외계인, 특히 백 살이 안된 젊은 외계인은 대체 어떻게 생겼냐며… 그녀와 즐겁게 ‘놀고자’한다고 했죠. 판사님도 아시죠? 그 '놀고자'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저는 독실한 우주신(universal God) 교 신자입니다. 신이 말씀하셨어요. "네 집에 든 자가 곧 나인 줄 네가 어찌 모르느냐"라고요. 손님은 곧 신과 같이 대접해야 하는 거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요.
아시다시피 전 낡은 남성형 안드로이드 하나에 의지해서 겨우 살아가는 노인네에 불과해요. 싸울 힘도, 장비도 없어요. 그리고 사사에게는 최신형 안드로이드가 있었고요. 그래서 그들에게 타협을 제안했죠.
사람에게 이러면 안 된다. 내 안드로이드와 사사의 안드로이드가 있으니까 둘 다 내주겠다. 사람만큼은 못하겠지만 당신들 좋은 대로 맘껏 즐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받아준 미란다에게 피해를 입힐 순 없었다. 낡은 안드로이드 ‘미란다논’은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재산이다.
나는 얼른 미란다의 집 별채로 사사진을 데리고 갔다. 정원 구석에 이어진 작은 개구멍처럼 생긴 비상탈출용 해치를 열고, 내 손으로 나의 사랑하는 사사진을 그들에게 ᆢ밀어 보냈다.
사사진은 그렇게, 냉동인간처럼 하얗게 굳어서. 이미 반 시체가 된 상태로 공간으로 떠밀려 갔고, 피에 굶주린 모기떼처럼 미란다의 유리돔 저택을 붕붕 날아다니던 그 일곱 할마시들이 그 애를 곧바로 낚아채갔다.
하지만ᆢ어쩔 수 없었다. 내가 당할 순 없으니 말이다.
"사사는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렇게 한 겁니다. 만약 사사진이라도 내어 주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불량배들에게 겁탈당했을 거예요.
그 잔인무도하고 무식한 야만족들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요? 집도 거의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어요. 판사님, 사사의 잘못이 없진 않지만 선처를 꼭 부탁드립니다."
미란다의 증언이 끝났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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