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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Oct 21. 2024

레위인의 변론-2

나는 죄가 없다

# 우주력 1045년, 11월 12일. 명왕성


은하연방 제1법정. 고법 사건번호 7865호.


<사사>


사사. 당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저 높은 단 위에 앉아 있는 판사가 나를 내려다보며 묻는다.  

 그러자, 갑자기 내 발 밑의 대리석 바닥이 홀로그램 화하여  깊은 심연의 우주 속ᆢ황금빛으로 빛나는, 표면 온도가 465도에 달하는 금성을 비춘다.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양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계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ᆢ"     


 최고형인 화형, 곧 금성으로 가는 열차를 타는 것이다.  비너스가 아가리를 열고 당장이라도 나를 받아들일 것만 같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왜 내가 저 불구덩이에 떨어져야 한단 말인가?

    

  나는 나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나의 첩, 나의 안드로이드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것조차 너무나 슬프고 화가 나는데, 나의 안드로이드를 부서뜨린 불량배들을 찾아내어 단죄하기 위해, 실물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사망한 본체를 해체해서 그 조각들을 인공위성에 실어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에 내려보낸 것이 죄가 되는가?     


  내 첩은 우주력 1045년 현재, 모든 남성형 안드로이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었다. 내가 그의 주인이므로, 그의 이름은 내 이름을 따서 사사진이라고 불렀다.


 3년 전, 나와 싸우고 자기 고향인 해왕성으로 도망친 그 아이를 쫓아가서 다시 데려오느라 대체 얼마의 시간과 재산을 썼는데     


  “증인을 신청합니다. 산드라 이바노브나입니다.”     

검사 측이 먼저 증인을 신청했다.    

 

산드라. 우주 최고의 안드로이드 제작자이자 생명과학의 권위자. 3년 전 유리돔 정원 대저택에서 나를 그렇게나 환대해 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거무스름해진 얼굴빛과 입가의 불독 주름이 두드려져 보인다. 나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그녀지만 열 살은 더 늙어 보였다.  

     

  “본인이 누구인지 직접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부서지고 분해되어 전 우주에 흩어진 안드로이드 ‘사사진’의 원래 주인이며 그의 창조자, 즉 ‘엄마’입니다. ”     


‘엄마’라는 말을 하면서 그녀가 울컥하는 것이 느껴졌다. 제길. 그래서 뭐? 내 전 재산 중 절반이 날아간 나보다. 그리고 이렇게 피고인이 되어 최소 몇 만년을 금성의 뜨거운 감옥 속에 넣어져 지져질 나보다 더 억울해?

어쨌건 산드라는 나한테서 돈을 받고 '물건'을 판 거잖아. 그게 죽든 부서지든 애초에 그녀가 손해 볼 일은 없었어.      


산드라는 법정 앞에서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녀가 피고석에 앉은 나를 죽일 듯 노려본다.     


  “증인은 저기 피고석에 앉아있는 인간 여성, ‘사사와 어떤 관계입니까?”    

 

  “사사는 제 며느리입니다.(She is my daughter-in law)”     


그녀가 말하는 동시에,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과 해왕성의 모든 언어로 발언이 번역되어 전 우주에 퍼진다. 지구어가 우주 대표어이고, 각 행성에서 대표로 초청받아 법정에 온 배심원들은 모두 지구 어를 거의 이해할 수 있지만,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몇몇 중요한 발언들은 배심원 각자의 모국어로 모두 전해진다. 보다 정확한 배심원들의 평결을 위해서이다.     


법정이 술렁거린다.


며느리라니. 저게 대체 언제 적 쓰던 말이야?

몇 천년 전 지구라고?


아직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을 위해 우주 법정 서기관이 허공에 손가락으로 “도터-인-러(법적인 딸)‘라고 크게 쓴다. 손가락 끝에 묻힌 특수물질이 바로 굳어져 글자가 되고, 이 글자들은 법정에 참관한 모든 사람들의 뇌리로 들어가 박힌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분해된 ‘사사진’은 내 아들이라는 뜻이죠.  저 여자, 사사는 내 아들을 첩으로 삼은 뒤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돌아온 아들을 나에게서 다시 빼앗아 죽음에 이르게 한 최악의 며느리예요. 

사사진은 나의 모든 영혼과 시간과 노력을 바쳐서 만들어 낸 우주 최고의 안드로이드입니다. 아름답고 현명하며 지적이고 탁월한 능력을 지닌. 흠잡을 데 없는 맑은 영혼을 지닌 생명체였죠.”     


  영혼이라고? 생명체라고? 인간과 거의 흡사하긴 하지만 안드로이드가 무슨. . 나는 살짝 콧방귀를 뀐다.


산드라가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피고석에 앉아있는 저 여자. 양심이라고는 우주먼지만큼도 없이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저년은 내 아들을 헐값에 사 갖고 가서는 저렇게 비참한 상태로 만들었어요.”   

  

“인신공격은 하지 마시고, 사실만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3년 전 내 아들이 목숨을 걸고 저년에게서 도망쳐서 내가 있는 해왕성까지 돌아왔을 때는 분명 저게 내 아들의 제대로 된 주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야 했어요.  

   사사와 싸우고 아들이 날 찾아왔을 때가 우주력 1042년이었죠. 빛나던 그 애의 눈에서 활력이 사라지고 그저 멍하니 뿌연 얼음 가스로 가득 찬 해왕성의 춥디 추운 대기를 바라보고 있었던 게 기억나요. 이 엄마를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별 말도 안 했어요. 아마 입력된 ‘안드로이드 행실규칙’에 어긋나기 때문이었겠죠ᆢ  

   

. 잠시 한숨을 쉬고는 산드라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사사는 자기 입으로 아들한테 나가라고 명령하고서, 다시 주인이랍시고 우주선을 타고 여기로 쫓아와서는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아 결국 데리고 돌아갔죠. 난 그래도 며느리라고, 내 아들의 주인이라고 사사를 정말 잘 대해 주고, 사사진에게 죽어도 네 주인 곁에서 죽어야 한다고 하면서 마지못해 그 애를 사사에게 돌려보냈어요."     


산드라는 또다시 숨을 고른다. 그녀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ᆢ 저년이ᆢ, 돌아가는 길에ᆢ 내 아들을, 지 손으로 직접ᆢ 직접ᆢ 사지로 몰아서 죽이고ᆢ, 그러고도 모자라 신체를 훼손하고 분해해서ᆢ이 어미가 시체를 찾지도 못하게ᆢ"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는 겨우 한 마디를 남긴다.     


"판사님. 부디 엄중한 판결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산드라가 증인석에서 곧 실신할 것 같다. 그녀가 겨우 말을 마친 뒤 정리들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온다.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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