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력 1045년, 11월 12일. 명왕성
은하연방 제1법정. 고법 사건번호 7865호.
<사사>
“사사. 당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저 높은 단 위에 앉아 있는 판사가 나를 내려다보며 묻는다.
그러자, 갑자기 내 발 밑의 대리석 바닥이 홀로그램 화하여 저 깊은 심연의 우주 속ᆢ황금빛으로 빛나는, 표면 온도가 465도에 달하는 금성을 비춘다.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양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계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ᆢ"
최고형인 화형, 곧 금성으로 가는 열차를 타는 것이다. 저 비너스가 아가리를 열고 당장이라도 나를 받아들일 것만 같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왜 내가 저 불구덩이에 떨어져야 한단 말인가?
나는 나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나의 첩, 나의 안드로이드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것조차 너무나 슬프고 화가 나는데, 나의 안드로이드를 부서뜨린 불량배들을 찾아내어 단죄하기 위해, 실물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사망한 본체를 해체해서 그 조각들을 인공위성에 실어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에 내려보낸 것이 죄가 되는가?
내 첩은 우주력 1045년 현재, 모든 남성형 안드로이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었다. 내가 그의 주인이므로, 그의 이름은 내 이름을 따서 ‘사사진’이라고 불렀다.
3년 전, 나와 싸우고 자기 고향인 해왕성으로 도망친 그 아이를 쫓아가서 다시 데려오느라 대체 얼마의 시간과 재산을 썼는데…
“증인을 신청합니다. 산드라 이바노브나입니다.”
검사 측이 먼저 증인을 신청했다.
산드라. 우주 최고의 안드로이드 제작자이자 생명과학의 권위자. 3년 전 유리돔 정원 대저택에서 나를 그렇게나 환대해 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거무스름해진 얼굴빛과 입가의 불독 주름이 두드려져 보인다. 나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그녀지만 열 살은 더 늙어 보였다.
“본인이 누구인지 직접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부서지고 분해되어 전 우주에 흩어진 안드로이드 ‘사사진’의 원래 주인이며 그의 창조자, 즉 ‘엄마’입니다. ”
‘엄마’라는 말을 하면서 그녀가 울컥하는 것이 느껴졌다. 제길. 그래서 뭐? 내 전 재산 중 절반이 날아간 나보다. 그리고 이렇게 피고인이 되어 최소 몇 만년을 금성의 뜨거운 감옥 속에 넣어져 지져질 나보다 더 억울해?
어쨌건 산드라는 나한테서 돈을 받고 '물건'을 판 거잖아. 그게 죽든 부서지든 애초에 그녀가 손해 볼 일은 없었어.
산드라는 법정 앞에서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녀가 피고석에 앉은 나를 죽일 듯 노려본다.
“증인은 저기 피고석에 앉아있는 인간 여성, ‘사사’와 어떤 관계입니까?”
“사사는 제 며느리입니다.(She is my daughter-in law)”
그녀가 말하는 동시에,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과 해왕성의 모든 언어로 발언이 번역되어 전 우주에 퍼진다. 지구어가 우주 대표어이고, 각 행성에서 대표로 초청받아 법정에 온 배심원들은 모두 지구 어를 거의 이해할 수 있지만,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몇몇 중요한 발언들은 배심원 각자의 모국어로 모두 전해진다. 보다 정확한 배심원들의 평결을 위해서이다.
법정이 술렁거린다.
며느리라니. 저게 대체 언제 적 쓰던 말이야?
몇 천년 전 지구라고?
아직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을 위해 우주 법정 서기관이 허공에 손가락으로 “도터-인-러(법적인 딸)‘라고 크게 쓴다. 손가락 끝에 묻힌 특수물질이 바로 굳어져 글자가 되고, 이 글자들은 법정에 참관한 모든 사람들의 뇌리로 들어가 박힌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분해된 ‘사사진’은 내 아들이라는 뜻이죠. 저 여자, 사사는 내 아들을 첩으로 삼은 뒤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돌아온 아들을 나에게서 다시 빼앗아 죽음에 이르게 한 최악의 며느리예요.
사사진은 나의 모든 영혼과 시간과 노력을 바쳐서 만들어 낸 우주 최고의 안드로이드입니다. 아름답고 현명하며 지적이고 탁월한 능력을 지닌. 흠잡을 데 없는 맑은 영혼을 지닌 생명체였죠.”
영혼이라고? 생명체라고? 인간과 거의 흡사하긴 하지만 안드로이드가 무슨. 풋. 나는 살짝 콧방귀를 뀐다.
산드라가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피고석에 앉아있는 저 여자. 양심이라고는 우주먼지만큼도 없이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저년은 내 아들을 헐값에 사 갖고 가서는 저렇게 비참한 상태로 만들었어요.”
“인신공격은 하지 마시고, 사실만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3년 전 내 아들이 목숨을 걸고 저년에게서 도망쳐서 내가 있는 해왕성까지 돌아왔을 때는 분명 저게 내 아들의 제대로 된 주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야 했어요.
사사와 싸우고 아들이 날 찾아왔을 때가 우주력 1042년이었죠. 빛나던 그 애의 눈에서 활력이 사라지고 그저 멍하니 뿌연 얼음 가스로 가득 찬 해왕성의 춥디 추운 대기를 바라보고 있었던 게 기억나요. 이 엄마를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별 말도 안 했어요. 아마 입력된 ‘안드로이드 행실규칙’에 어긋나기 때문이었겠죠ᆢ”
휴. 잠시 한숨을 쉬고는 산드라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사사는 자기 입으로 내 아들한테 나가라고 명령하고서, 다시 주인이랍시고 우주선을 타고 여기로 쫓아와서는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아 결국 데리고 돌아갔죠. 난 그래도 며느리라고, 내 아들의 주인이라고 사사를 정말 잘 대해 주고, 사사진에게 죽어도 네 주인 곁에서 죽어야 한다고 하면서 마지못해 그 애를 사사에게 돌려보냈어요."
산드라는 또다시 숨을 고른다. 그녀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ᆢ 저년이ᆢ, 돌아가는 길에ᆢ 내 아들을, 지 손으로 직접ᆢ 직접ᆢ 사지로 몰아서 죽이고ᆢ, 그러고도 모자라 신체를 훼손하고 분해해서ᆢ이 어미가 시체를 다 찾지도 못하게ᆢ"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는 겨우 한 마디를 남긴다.
"판사님. 부디 엄중한 판결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산드라가 증인석에서 곧 실신할 것 같다. 그녀가 겨우 말을 마친 뒤 정리들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온다.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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