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정필 Oct 28. 2022

예고 없이 찾아온 갱년기

그림출처:네이버 이미지

  갑자기 오른 열기에 겉옷을 벗는다. 영하의 아침 기온이었지만, 순식간에 오른 열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채까지 꺼내 든다. 그런데 언제 ‘더웠냐’는 듯이 금방 찬 기온이 온몸을 덮친다. 최근에는 밤잠이 깊지 못해 거실에서 어슬렁거리다 소파 한 귀퉁이에서 잠이 드는 날이 잦아졌다. 이런 반복적인 패턴이 요즘 나의 일상이다.     

  작년부터 한 달, 두 달 생리가 빠지더니 최근에 몇 달을 건너뛰면서 몸의 변화가 시작되었다.‘중년의 반항기’ 갱년기가 시작된 것이다. 바디 로션을 듬뿍 발라도 금방 흡수되어 가려움증이 나타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몸의 온도는 잦은 감기를 불렀다. 어릴 적부터 머리숱이 많아 평생 파마를 해 본 적 없었는데, 그 녀석(갱년기)이 찾아오면서 가느다란 실처럼 얇아진 머리카락은 머리에 착 달라붙어 중년에 들어선 나를 더 왜소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불편함이 늘어가는 일상에 지친 어느 여름날, 나는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난소 초음파와 호르몬 검사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차분하게 “폐경기가 온 것 같습니다. 폐경기란, 난소의 노화로 기능이 떨어지며 배란과 여성호르몬의 생산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데,.... ”라며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셨지만, 주위 친구들보다 이르게 찾아온 폐경기가 반갑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몇 번씩 느껴지는 열감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없나요?”라고 물으니 선생님은 “호르몬제를 처방받아먹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좋은 방법은 맞지만 호르몬제를 복용하면 유방암 확률이 높다는 주위의 말 때문에 선뜻 처방을 받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불편한 맘을 추스르지 못하고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아들과 딸의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요즘 들어 부쩍 예민해진 아들이 하루를 멀다 하고 가족들 부딪친다. 나에게 갱년기가 덮친 것처럼 아들은 중2병 앓이를 하는 중이다. 한집에 갱년기와 중2병이 존재하는 한, 집안의 조용한 날들은 이미 멀어졌다.

  작년까지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요’라는 말을 수시로 하던 아들은   내 사소한 감정까지 알아주는 마음 깊은 아이였다. 아들과 마트를 같이 가면 “ 이런 무거운 것은 아들이 들어야죠”라고 하며 진열된 물건을 거뜬하게 옮기고, 깊은 밤, 내 기침소리가 심해지면 언제 소리를 들었는지 슬그머니 다가와 “엄마 괜찮으세요.”하며 따뜻한 물 한잔을 내밀 던 아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소한 일에도 불쑥 화를 내고, 자신의 방 안에 소리 없이 들어오는 것을 무척 불쾌해했다.

  아들과 한바탕 다투는 날이면 “‘어휴’ 이제 중2인데 몇 년을 더 겪어야 어른이 될까? 내 아들 같지 않은 모습이 낯설지만, 그 모습 또한 커가는 아들의 모습이니 이해하고 사랑해 줘야겠지. 나 또한 그런 사춘기를 겪고 이렇게 어른이 된 것처럼, 지금은 기다림의 여유가 필요한 타이밍이야”하며 나를 다독인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갱년기와 중2병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지금까지는 승자는 없고 상처만 남았다.    

  나는 지금 갱년기 앓고 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내 몸 안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전쟁을 치른다. 내 감정을 다루지 못해 ‘불쑥’ 솟아낸 말들에 후회를 하고, 전후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버럭’한 행동에 뒤늦은 자책을 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는 따뜻한 햇살에 기대어 기운을 내볼까 하다가, 흐린 오후가 되면 잡을 곳 하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리고 ‘스멀스멀’ 우울감이 나를 덮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의 온도차가 심한 것이 갱년기 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불편하고 불쾌하다. 

  월요일 아침, 병원을 방문했다. 더 버텨 볼까 하다가, 아래로 자꾸만 가라앉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것 같아 호르몬제 처방을 받았다. 주위 사람들은 폐경기가 되면 여자로서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서운함 크다고 하던데, 나는 호르몬 부족으로 오는 몸의 불편함과 무기력이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처방을 내리시며 “호르몬제는 최소의 약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도록 하는 게 목적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운동도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선생님 말씀처럼 나도 약 한 알에 의존해 보겠다는 생각보다 약 한 알로 더 힘차게 살아보겠다는 내 의지를 담았다. 

  오늘 아침 나는 약 한 알과 물 한 컵을 마셨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갱년기와 동거하니 힘은 들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내 내면의 노련함도 있지 않겠는가? 그냥 하루하루 극복하듯 살아가 보자. 시간이 흘러서 이 삶이 일상화가 될 때까지~

이전 10화 아들과 장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