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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Oct 28. 2022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그림출처:네이버 이미지

   나는 가끔 멍하니 어릴 적 먼 과거에서 가까운 어제까지 내 삶들을 살짝 끄집어내어 되씹는 즐거움을 누린다. 어릴 적 시골 기와집, 툇마루, 정겨운 돌길들, 그리고 우리 마을 입구‘이중 감나무’란 이름을 가진 큰 감나무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첫아이 출산과 힘겨운 모유수유의 과정 그리고 둘째가 고열로 인해 뇌수막염 검사를 받으며 목이 쉬도록 울었던 날들, 부모가 되면서 처음 맞이하는 세상에 당황하고, 애태우며, 즐거웠던 그런 날들을 되새긴다. 


  며칠 전, 저녁 식사 준비하는데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나는 일기 쓰기가 귀찮은데 엄마는 어릴 때 일기를 썼어.”라고 묻기에 나는 “글쎄, 쓴 것 같기도 하고 안 쓴 것 같기도 하네. 잘 모르겠다.” 라며 말끝을 흐렸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나는 슬그머니 창고로 향한다. 창고 구석 귀퉁이에서 '나의 골판지 상자'를 발견한다. 이사 온 이후 상자를 열어보지 않아서인지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다. 몇 번의 이사로 군데군데 찢기 흔적과 얼룩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상자의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박스를 열어보니, 대. 여섯 권 정도의 크고 작은 노트가 보인다. 그중에서 플라스틱 꼬불이로 되어 있는 흰색 노트를 펼쳐본다. 결혼을 하던 해 시댁과의 갈등이 깨알처럼 박혀있고, 첫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는 과정의 힘겨운 나날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겨보지만 비슷한 아픔과 자책감들이 장대하게 나열되어 있다. 남기고 싶은 내용들은 구석구석 많았는데 표현력은 단순했다. 그때 글 쓰는 방법을 배웠더라면 좀 더 재밌고 풍성한 글이 되지 않았을까? 안타까웠다. 


  나의 첫 번째 노트는 아마도 중학교쯤 시작된 것 같다. 그날, 수업 중 책상 아래로 들어온 따뜻한 햇살이 꽁꽁 얼은 내 발을 녹이고 내 몸을 감쌀 때 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내 어릴 적 친구들과 햇살이 비치는 담벼락 아래서 쑥을 캐던 시절로 돌아갔다. 지푸라기를 헤집고 어린 쑥을 찾아내어 한 송이씩 뜯어 바구니에 담고, 누구 바구니 쑥이 더 많은지 서로를 곁눈질하던 그 시절을 그렸다. 그렇게 돌담 밑 햇살은 지금까지 어김없이 봄을 데리고 왔다.

  두 번째 노트는 우리 동네 변화이다. 내 기억 속 우리 마을은 두 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소실 적 내 고향은 구불구불한 논들 사이로 감나무와 미루나무가 군데군데 그늘을 만들었고,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동네였다. 동네 어귀 냇가에는 시멘트 사이로 크고 매끈한 돌을 박아 넣은 빨래터가 3군데 있었으니, 가구 수는 꽤 많은 동네였다. 대략 80가구 이상으로 기억한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큰길은 돌부리가 여기저기 늘려 있고, 하루에 세. 네 번 버스가 지나갈 때면 사방에 먼지가 구름처럼 일었다. 우리 집은 마을의 중심인 동네 회관 옆에 위치한 기와집이었고, 집 아래 구판장과 버스정류장이 위치해 있었다. 

  그런 동네가 변화한 것은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경지정리와 초가집 없애기’부터 시작되었다. 논들은 네모로 각 잡은 듯 반듯해지고, 초가집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더니 기와집이 들어섰다. 고집스러운 진수 할머니 초가집은 끝까지 남았다. 집을 감싸던 돌담과 밭의 탱자나무 울타리는 벽돌로 교체되고, 동네를 가로지르는 큰길도 시멘트로 포장되어 더 이상 먼지가 일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기와집들은 양옥집으로 바뀌었고, 기와집으로 남아 있는 집들은 내부를 입식 부엌으로 교체했다. 기와집이었던 우리 집도 그때 단층 양옥집으로 바뀌었다.


  동네의 변화 속에서 편리함에는 만족하지만, 옛 동네의 모습 또한 그리웠다. 옛 고향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은 많았지만, 그 당시 나는 돈 없는 중학생이었고 카메라가 귀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간혹, 오빠들이 소풍 간다고 카메라를 빌려온 날이면 변화에서 살아남은 동네를 담았다. 빛바랜 앨범 속에 몇 장 안 되는 그 시절의 추억이 꽂혀 있다. 그 시절의 더 많은 사진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항상 뒤 따랐다.

  그래서일까 나는 전원일기를 자주 본다. 남기지 못한 시절의 아쉬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전원일기는 추억여행을 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이다.  딸아이는 나에게 말한다. “엄마 전원일기 재밌어” 또 다른 날은 “엄마 전원일기 틀어줄까?” “엄마는 할머니하고 똑같네. 전원일기 즐겨 보고” 그러면 나는 “응 전원일기 재밌지. 엄마의 고향과 닮았지.”라고 대답한다. 전원일기에 흠뻑 빠져 있을 때쯤  노파심에 ‘전원일기가 방영하지 않으면 어떠하지, 녹화라도 해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이렇듯 나는 과거로의 여행을 즐긴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가 깊어졌을 때, 나의 추억여행을 풍성하게 즐기려면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해야 한다. 나의 이야기를 쓰고, 내 주위 환경을 부지런히 사진에 담아야 한다. 왜냐하면 시대의 변화가 빠르고, 내 머릿속에 저장된 생각들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추억을 끄집어내어 조금씩 곱씹고, 영혼을 부풀리며, 추억에 기생하는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하나의 이유가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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