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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Oct 28. 2022

아들과 장보기

  토요일 아침, 늦잠이 허락된 주말이지만 서둘러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유난히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남편의 생활 패턴도 있지만, 늦잠을 자고서는 오늘의 빽빽한 일정을 다 소화해내지 못할 것 같아 부산하게 움직였다. 아들은 오전에 배드민턴과 미용실이 예약되어 있고, 딸은 주말 수영을 간다. 나도 글쓰기 수업과 아이들 픽업을 해야 하기에 일찌감치 달콤한 늦잠을 포기했다. 왜냐하면 이번 주말은 일상적인 일정 외에 내일로 다가온 양조부 ‘기제사’ 장을 봐야 해서 더 바쁘다.

  바쁜 오전 스케줄을 끝낼 무렵 아들을 학원에 내려주고, 우리는 주말에 가끔 들리는 작은 외숙모 칼국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칼국수를 먹으며 남편에게 슬쩍 묻는다. “오늘 제사장 봐야 하고, 일주일 먹을 음식도 사야 하는데, 마트 같이 갈래”라고 물어보니, 남편은 고개를 좌. 우로 저으며 “배드민턴 치러 체육관 갈 거야” 하고 대답한다. 본인의 마음이 동 해야 가는 남편의 성격을 알기에 나는 쿨 하게 “알았어. 혼자 갔다 올게” 대답하고는 슬쩍 휴대폰을 펼친다. 학원에 가 있는 아들에게 “태경아 엄마하고 마트 갈래”라는 메시지를 넣는다. 오후 3시쯤 되었을까? “엄마 마트 같이 갈게요. 학원 쪽으로 오세요.”라는 메시지가 들어온다. 그렇게 아들과 나는 제사장을 보러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 도착하자, 아들은 재빠르게 캇트를 끌고 온다. 나는 시장 볼 리스트를 펼치며 마트를 돌기 시작했다. 아들은 내 옆에 붙어서 내가 사려는 물건을 드려다 보며, 유통기간을 확인하고, 가성비 좋은 물건을 카트에 담는다. 마트의 동 선이 길어 멀리 있는 물건 가지러 가기를 귀찮아하면 아들은 “엄마 제가 가져올게요.”라며 단번에 가져온다. 우리는 다정한 연인들처럼 먹고 싶은 것도 고르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며, 재촉하는 사람 없이 넉넉하게 시장을 봤다. 그렇게 마트에서 두 시간가량 시장을 보고, 캇트에 물건을 가득 담아 지하의 포장대로 갔다. 골판지 빈 박스가 가지런하게 놓인 포장대에서 아들은 제일 큰 박스를 꺼내 무거운 물건부터 담기 시작했다. 큰 상자를 아이 혼자 들고 가는 것이 안 서러워 “엄마랑 같이 들자”라고 말하니 “엄마, 이런 건 아들이 들어야죠. 걱정 마세요” 하며 큰 박스를 안고 끄떡끄떡 걸어간다.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라보며 ‘아~ 지난해까지 초등학생이었는데, 언제 저만큼 커서 엄마를 위해 주네.’ 자식을 키운다고 해서 다 잘 커는 것은 아닌데, 몸이 커져가는 것만큼 마음도 깊어지니 엄마로서 심심한 위로가 되었다.

  큰아이라서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 씀이 깊은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든든함을 보여준 것은 작년 중학교 들어갈 무렵이다. 명절이 다가오자 시댁의 잠자리에 불편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이틀도 아니고 하룻밤 자고 오는데 뭐 그리 불만이 많아” 하며 화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시댁에서 우리 가족이 자는 방은 작은 골방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작은방이 불편하지 않았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커가는 아이들을 작은 방에 맞추려 하니, 하룻밤 사이 몇 번씩 일어나고, 아침이면 온 몸이 뻐근하게 아팠다. 

  식탁에서 한참 부모님의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이 한마디 한다. “아빠, 명절마다 엄마는 쉬지 않고 일하는데,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 잠은 편하게 자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한마디 하고는 ‘휴’ 큰 숨을 한번 쉬더니 “명절에 아빠는 할머니 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술 한 잔 하시며 즐기시지만, 일만 하는 엄마는 명절이 그다지 반갑지 않을 거예요. 그 마음 아빠가 알아줬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듣던 남편은 일순간 침묵했다. 평소처럼 아들에게 권위를 내세우지도,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아빠의 눈치를 봐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는 아들을 보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훌쩍 커버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아빠에게 주눅 들지 않고, 감정을 섞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말하는 그 모습이 멋있었다.

  어제까지 가부장적인 아빠의 말에 아들은 “아니요”라는 말을 못 했고, 생각이 맞지 않을 땐 입안에서 머무는 말을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런 아들에게 나는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엄마가 옆에서 조력자가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눈치를 보거나 침묵을 택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아들이 “아니요”라는 말을 했다. 내심 ‘잘 커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집에서 ‘내편’이 생겼다는 든든함에 소소한 행복감마저 들었다.

 결혼을 해서 15년 정도를 살아보니, 남편은 내편이 아닌 남의 편이었다. 항상 나보다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말했고, 시댁의 풍속을 따라야 함을 강조했다.  30년 넘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는데, 어떻게 한쪽으로만 맞춰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잦은 언쟁을 했고, 나는 아직도 남편이 생각하는 ‘착한 며느리’ 그 지점에 가지 못하고 있다. 또한 희생을 강요한 남편의 욕심을 채워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진짜 내편이 아닌 ‘남의 편’이었다. 어느 가정이든 ‘힘의 불균형’은 작용한다.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는 잠재적으로 상처를 받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들과 장보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쇼핑한 물건들을 수납장에 채워 넣고, 묶음 물건은 가위로 잘라서 냉장고에 넣는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내 손이 갈 틈 없이 ‘착착착’ 정리한다. 가끔 장을 보고 와서 남편이 정리를 하는 모습을 봐 왔지만, 아들이 정리하는 모습은 더 대견하고 든든해서 입 꼬리가 올라간다. 아마도‘내편’ 아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비친 것이다.

  그렇다고 아들이 매번 성숙한 것은 아니다. 불쑥불쑥 내뱉는 “내 알아서 해요”라는 짜증 섞인 표현과 감정들이 간간이 보인다. 그럴 때면 질풍노도의 중2병과 세상살이에 곪아서 터져 나온 갱년기가 맞붙는다. 결국은 뒤늦은 후회로 서로의 마음을 노크하며 대화의 시간을 갖는 아들과 나는 닮았다. 그 대화 속에는 아들의 진솔함이 보이고, 나의 성급함도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의 무게를 낮추려 노력하는  마음이 잘 맞는 원 팀이다.

  오늘처럼 아들과 시간이 맞아 단 둘이 마트에 장 보러 가는 날, 나는 은근이 설렌다. 아들이 생기발랄해서 좋고, 민첩해서 좋고, 그리고 내 맘을 잘 알아줘서 좋다. 그런 아들을 볼 때면 든든한 남자처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자식의 든든함이 내 마음속에 들어올 때, 나는 자식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욕심은 서로를 자유롭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쁘게 지나간 오늘, 기제사 장을 봤고 일주일 먹을 음식들도 정리했다. 곳간을 채운 듯 마음이 든든하다. 그리고 기다려진다. 다음 주 아들과 장보는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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