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 (2)
산전 초음파에서 태아가 구순구개열이 진단된 산모를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만났을까? 요새는 산전 초음파의 발달로 이전에는 잘 진단되지 못했던 태아의 구조적 이상이 비교적 쉽게 진단된다. 역시나 이 태아도 구순구개열이 의심되어 개인병원에서 전원되었다. 사실 구순열은 생각보다 흔한 질환이다. 약 1,000 명 중에 1명이고 아시안에는 약간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1.7명) 알려져 있다 (그래서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의 아버지도 구순열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지 않았을까?) 구순구개열은 원인도 복합적이고 간혹 유전적 요인도 있어서 첫째 아기가 구순열로 태어난 경우 둘째 아기에서 구순열이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그 확률은 일반적으로 2-5%로 알려져있다.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을 다했고 본원 성형외과 임교수를 만나서 수술에 대한 구체적인 상담을 더 받을 것을 권했다. 산모는 울고 있었고 남편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부인에게 한 마디를 하였다. “네가 정해” 과연 무엇을 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미 산모는 태동을 느낀 지 한참 되었을 시기였기에 나는 ‘지금 정할 것을 없는데…’ 라고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얼마 전 늦은 나이에 아기를 가진 한 부부에게서 동일한 질환이 발견되었다. 산모는 눈물을 그렁그렁하였지만, 남편은 늦은 나이게 갖게 된 아기에서 발생한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잘 받아들였고 나와서 잘 키우겠다고 나에게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최근에는 임신 22주에 아기의 한쪽 귀가 유난히 작아 보이는 ‘소이증(microtia)’ 태아가 진단되었다. 소이증은 발생학적으로 타 장기의 이상이나 다른 염색체 또는 유전자의 이상도 동반되는 경우가 꽤 있는 질환이기에 나는 양수검사 등의 정밀 검사를 권했다. 물론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임신의 유지 차원에서 달라질 것을 없겠지만, 그래도 동반 질환 등을 파악하기에 중요한 검사임을 부연 설명하면서… 산모는 마스크 속으로 주룩주룩 눈물을 흘러내렸고 그녀의 눈은 금방 빨개졌다. 남편은 나에게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고 흐느끼는 부인의 어깨만을 다독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천 번을 넘게 말한 것 같은 말, 아기가 모두 구조적으로 정상으로 태아나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바람이지만, 하나의 세포(난자)와 하나의 세포(정자)가 만나서 하나의 생명체(개체)가 되는 과정은 결코 완벽하지 않아 크고 작은 구조적인 이상이 생기는 겁니다. 그 빈도는 주된 이상 (major anomaly) 만 따져도 약 2-3%나 되고 기타 minor 한 경우까지 합치면 4-6%에 이릅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단지 ‘모양’에 대한 것이고 아기의 기능적인 부분은 산전에 알 수 없고 커가면서 지켜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기의 유전 정보의 절반은 남편에게 온 것이라는 것이다. 아기는 부인의 자궁에서 성장하고 있을 뿐이지 부부의 아기이다. 같이 만든 아기에 대한 마음을 혼자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첫 번째 부부는 더 이상 외래에 오지 않았다. 두 번째 부부는 만삭에 건강한 아들을 낳았고 아기는 약 100일 정도 되는 즈음에 본원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잘 받았으며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너무나 잘 크고 있다. 세 번째 부부는 다행히 양수검사에서 염색체 이상 및 주된 미세결실의 소견이 없음이 확인되었다.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으러 온 날, 부인은 더 이상 울지 않았고, 내 책을 읽고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는 말을 고맙게도 나에게 전해주었다. 남편은 여전히 나의 설명보다 부인의 모습을 더 살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식이란 내 몸에서 나왔지만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자식이 나의 소유물이던 아니건, 내가 자식의 소유물이건 아니건 확실한 것은 여기서 ‘나’란 ‘엄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를 의미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