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닉 러브라고 할지

[단편소설] 2화

by 유정 이숙한

오성 급 호텔 최고의 셰프라고 거만하게 굴던 현우는

직장 동료들이 주식으로 대박 난 것을 목격했다.

대중심리인가, 시대 흐름에 역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에 동요되고 있는 현우다.


때마침 살고 있던 집을 팔아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모자라는 돈은 전세로 충당하고 일부는 대출을 받았다.



아내 몰래 집 판 돈 일부를 꿍쳐 우량주 주식을 샀다.

하루 이틀 숨을 죽이며 대박의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찍은 품목마다 하한가를 쳤다.

도깨비놀음인가, 일억을 투자했는데 이백만 원이라니?


아내는 집 판 돈 일부가 새어나간 것을 알았다.

대출을 받아 집을 샀는데, 집 판 돈을 꿍친 사람이

남편이라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셈이다.


아내는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다.

그건 숨길 수 없는 진실이다.

남편에 대한 존중과 신뢰감이 땅에 떨어졌다.

남편과 얼굴이 마주치면 열불이 뻗치는 아내!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도 아내를 소 닭 보듯이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퇴근하면 작은 방에 틀어박혀 문을 쳐 닫고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아내와 마주칠세라 조심했다.


아내와 마주치면 잔소리 총알을 장전하여 총공격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미안하다, 잘못했다!'라고 하면 되는 것을 그 말이

입에서 쉽게 튀어나오지 않았으니 냉전은 오래 지속될 수밖에..


꼭 전해야 할 말은 카톡을 통해 보내는 게 그들 부부의 소통 방식이었다.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그는 하연에게 고백했다.

- 내가 주식으로 폭망 했지만 그전까지 내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해요!


현우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돈을 벌려고 저지른 일이라며 자기 합리화를 주장했다.

재수가 없어서 그런 일이 발생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와의 관계가 졸지에 어정쩡한 갑과 을로 추락하였다.


아내와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어본 지 오래다.

몇 년은 아내의 시선을 피해 지방으로 전전했으나

일이 잘못되어 그마저 어긋나고 말았다.


아내를 위해 한몫 잡아볼 심산이었으나 결과물이

치명적이다 보니 중범죄를 지은 죄인으로 전락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지만 땅에 떨어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건 물 건너간 지 오래다.



그는 식당을 여러 번 개업했으나 번번이 쪽박이 나서

초기 투자금을 찾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옥 같은 나날 속에 하연과 대화의 창을 여니까,

막힌 숨이 터져 날숨들숨이 용이하다.


하연의 마음을 얻고 나니 땅에 떨어진 자존심과

자존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밀린 숙제를 한 거 번에 해치운 것처럼 행복한 현우다.


하연의 전부를 가지고 싶고 열렬히 사랑받는 기분이다.

혼탁한 시대에 흔치 않은 플라토닉 러브라고 할지.

소설 속 아련한 주인공이고 싶은 하연이다.



하연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아름답고 멋진 사랑을 꿈꾸었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현우는


- 우리 사랑은 순수하니까 예쁜 사랑 숨김없이 써 봐!

밤 사이 눈이 온 것처럼 살며시 당신이 다가왔어.

당신은 나의 희망이야.


- 수줍음이 많은 소년처럼 사랑스러워! 남의 건데 뺏고 싶을 만큼..


- 예쁘게 봐줘서 고마워. 내가 자기 건데 액자 속에

넣어두고 바라봐! 보고 싶다, 우리 언제 만나지?


숙맥인 현우의 진심 어린 고백이었다.

오직 혀와 손맛에 의지하여 맛을 그려내는 셰프다.

그를 스쳐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손맛을 기억한다.



현우는 카톡을 주고받는 동안 언어 마술사가 된 것처럼

사용하지 않던 언어들이 톡톡 튀어나왔다.


현우가 웃으며

- 내가 도둑이었네, 자기 마음을 훔쳐 갔으니 경찰관 불러야겠다?


하연은

-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않았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날

좋아하는지 의아하기도 하고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 건지

의문이 가기도 했지.


-그럴 수 있지, 우리처럼 카톡으로 친해진 사람은 흔치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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