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늪에 빠지다

[단편소설연재] < 불편한 진실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하얀 눈 속에 파묻혔다.

삼라만상이 어디를 가든 얼음 왕국이다.


염화칼슘으로 얼음 왕국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간선도로와 이면도로를 덮은 눈이 햇살에 녹아내렸다.

저녁이면 꽁꽁 얼어붙어 거대한 스키장을 방불케 한다.


하연은 강추위에 두꺼운 옷으로 몸을 휘감았다.

이른 아침 빨간 깃봉을 들고 횡단보도를 지키고 서있다.

길을 건너는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거북목이 되었고

하얀 눈과 추위 때문에 온몸이 얼어붙어 초점이 없다.



현우에게 전화가 왔다.

사랑의 훈풍은 얼음 왕국의 강추위를 저만치 날려주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오뉴월의

훈풍처럼 사르르 녹아 흔적 없이 사라진다.


시내와 조금 떨어진 바다는 바람을 곧추 세우고

심술을 부리며 벌판에 서성이는 한파를 휘몰고 다닌다.

떨고 있는 은행나무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듯

헛기침을 연발하며 서 있었다.


다음 날이었다.

하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일어날 수 없다.

째 강추위와 시름하던 몸이 땅속으로 기어든다.

정신이 몽롱하다. 온몸이 얼어붙은 듯 먹먹하다.

몸에 있는 세포들이 코로나 19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하고 방에서 뒹굴고 있다.



사람의 온기가 없는 집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황량하다.

찾는 이가 없으니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다.

항해 중에 폭풍우를 만나 산산이 부서져 뒤집혔다.

아수라장이 된 앙상한 배에 홀로 남아있는 딱한 그녀!

현우는 하연을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는 코로나19 환자인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간식거리라도 보내고 싶지만 동전 몇 잎만 딸랑거리며

얄팍한 바지 주머니를 들락거리고 있을 뿐이다.

빛이 들지 않은 어두운 동굴처럼 그의 가슴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현우다.



그는 아파트 형 공장에서 몇몇 제품을 만들고 있다.

몇 달째 수입이 1도 없다. 가련한 인생이 된 현우.

재료를 구입할 카드를 대표가 그에게 맡겼지만

개인 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 융통성 없는 남자다.

원래 가지고 있던 성격이 어딜 가랴!


아내는 눈이 마주치면 원한으로 사무친 적을 바라보듯

악의에 찬 눈초리로 그를 쏘아본다.

그 눈이 어찌나 무서운지 오금이 저린 현우다.


수입이 있어야 아내에게 얼마의 생활비를 내놓으련만..

2년 넘게 백수로 살고 있으니 집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강추위에 버려지면 갈 곳이 없다.

그나마 귀하게 키운 애들 아버지라고 하니 잘못했다고

빌지 않으면 총으로 쏴서 죽이고 싶은 심정이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그의 아내가 아닌가.



신혼 초에는 그녀에게 즐거움을 주던 남편이다.

아이들 중 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럭저럭 행복했다.

아이들이 군대에 갔을 때 같이 면회를 가고 행복했다.


자존심 내려놓고 아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아내의 궁핍함도 풀어주면 그나마 살길이 열리겠지만

고집을 세우고 있는 현우를 누가 예뻐해 주겠나?


아내는 그가 무보수의 1인 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정을 알리가 만무했다.

현명한 아내와 의논해서 일을 벌이면 대책이 있겠지만

잘한 것도 없으면서 입을 봉한 지 오래된 현우다.



이해가 간다. 그도 그럴 것이, 현우가 소개하여 몇 억을

투자한 대표인데, 투자한 회사가 망해 투자한 돈을 몽땅

날리고 말았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그를 바라보는 대표의 눈이 짜증으로 경련을 일으킬 수밖에.

미련한 현우는 점심을 굶으며 일하고 있다.

그동안 벌고 남은 몇 푼의 돈으로 교통비나 충당하는

실정이니 대표가 준 카드로 점심을 사 먹을 수 없었다.


하연을 만나려면 품위유지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만나면 맛있는 밥을 사줘야 하는데 그 마저 허락되지

않으니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고 고문을 당하고 있다.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바람에 펄렁거리며

울고 있는 깃발처럼, 가을철 찢어진 문풍지처럼

그의 주머니가 윙윙 소리 내어 한없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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