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십 년처럼

[단편소설] 4화

by 유정 이숙한

하연은 코로나19로 며칠 째 갇혀 지내고 있다.

남편은 딸 살림을 차린 지 5년이 지났으면

유통기간이 지났을 법도 한데 남편과 젊은 여자는

찰떡궁합인지 도통 떨어질 기미가 없다.


초기에는 미안해하며 집에도 가끔 들리더니

한두 해 지나자 발길을 끊었다. 모든 갈등의 원인이

하연에게 비롯된 것처럼 당당해졌다.



그는 코로나 19에 생강차와 쌍화차가 좋다며 했다.

하연은 생강차와 쌍화차를 마시며 무료한 일상을 달랜다.

보이스톡이 울리자, 전화를 받았다.


투박하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 멋대가리 없고

부드럽지 않지만 하연을 걱정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녀의 가슴이 소용돌이친다.


종일 입을 닫고 있으니 쓴 내가 나는 하연이다.

수다를 떨 친구가 없으니 감옥에 갇힌 기분이다.

활동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니 무기력해진다.



현우와 통화하면서 그녀의 얼굴이 밝아진다.

하연이 창문을 열었다.

2월의 찬바람이 그녀의 가슴을 파고든다.


유리창 너머의 바깥세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세상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하연의 눈이 한 곳에 머문다. 집게를 들고 휴지나

담배꽁토와 휴지를 줍는 여인이 보인다.


눈 속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쓰레기를 담은 봉투들이

찬바람에 펄렁거린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그녀는 심호흡하며 바람과 맑은 햇살을 품에 안는다.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진 것 같던 마음이다.

그와 통화에 위로 솟구치는 분수처럼 힘이 생긴다.


보이스톡 전화다. 현우였다.


- 정샘. 입맛이 없어도 식사하세요. 반찬은?

- 콩나물김칫국이요.

- 콩나물김칫국에 밥 말아 드세요. 김을 듬뿍 부셔 넣고

먹으면 맛있어요. 옆에 있으면 내가 해줄 텐데..


하연은 김치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넣어 한술 뜬다.

김을 부셔 국에 넣어 먹으니 먹을만하다.

밥 수저를 놓자마자 쌍화탕을 데운다.

약봉지를 뜯어 쌍화탕과 함께 입에 털어 넣는다.



하연은 우울의 늪에 빠졌다.

창문 너머 바람은 차갑지만 햇살은 따뜻하다.

저만치 성당의 첨탑이 멀리 보인다.


주차타워를 만들다 중단된 건물이 흉물스럽다.

하연의 집은 언덕 위에 있다.

가끔은 보이지 않던 저택의 정원이 보인다.

저택의 울안에 있는 벚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꽃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목련이 잔뜩 부풀어있다.

겨울잠에서 깨어 찬란하게 꽃 피울 날을 기다린다.

2월이 갔다.



하연은 첫 출근 했다.

꽃샘추위에 조석으로 바람은 차갑지만

삼월의 부드러운 햇살이 피부로 파고든다.


현우는 4층 옥상에 올라가 바람이 물고 온

미세먼지와 나뭇잎을 쓸어 마대에 담는다.


깊은 통에 심은 진달래는 꽃샘추위에도 참지 못하고

꽃눈이 부풀어 올랐다.

진달래 꽃망울을 들여다보며

- 봄이 왔다고 기지개 켜나? 예쁘게 꽃을 피워라!

네가 활짝 웃는 모습을 정하연 샘에게 보내줄 거다.


만난다고 생각하니 하루가 십 년처럼 긴 현우다.

밤잠을 설치며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하얀 구름 사이로 파란 웃음을 흘리는 서울 하늘을

담아 그녀에게 보내며


- 당신은 내 머릿속 전부입니다. 만난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합니다. 잠시 그립기도 합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여 당황스럽습니다.

가끔은 내가 정신 나간 놈인가 내게 되물어 봅니다.


- 정신 줄 꽉 붙들고 놓지 마세요.


하연은 서울 하늘의 파란 웃음이 담긴 하얀 구름과

문자를 받으니 기분이 좋다.

광활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다.



하연은 현우에게 마음이 끌릴수록 두려움이 커진다.

'그가 아내와 졸혼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진실일까,

거짓일까?'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닐 거야.' 스스로 묻고 대답한다.


현우는 하연과 대화할수록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든다.


하연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다정함.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그리움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급기야 그는 사랑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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