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 중독되었다 > 유정 이숙한
난 바다가 직장인 어부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9남매와 부모가 살아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었다.
어려서부터 배가 부르게 먹은 기억이 없다. 친구들은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난 밭일을 하거나 갯벌에 나가 조개와 낙지를 잡아야 했다. 열심히 일해도 배부르게 먹지 못했다. 열다섯 살 어린 나이지만 일은 손끝이 다부져서 밭일이나 갯벌일까지 똑소리 나게 야무지게 잘했다. 시골에 살다 가는 배고픔을 면하기 어려울 거 같아 기차비를 꼬불쳐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는데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낯설었다.
기차역에 내려 머뭇거리고 있는데 중년의 여자가 무거운 짐을 기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 짐을 옮기려고 착하게 생긴 아저씨의 지게에 짐을 실었는데 중간에 낀 작은 짐이 내 눈에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난 말없이 그 지게를 따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짐이 낙하하는 찰나 내가 잽싸게 가서 붙잡았다. 그것이 내게는 기회가 되었고 지게꾼 아저씨에게는 행운이었다. 아저씨는 그 보따리가 떨어졌더라면 배상을 해야 했으니까.
그 후 작은 짐은 내 등에 지고 날랐다. 지게꾼 병준 아저씨는 나를 삼시 세끼 밥을 배불리 먹여주고 좁은 쪽방이지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그렇게 대여섯 달을 서울의 쪽방인 달동네에서 보냈다.
눈 뜨고 코를 베어 간다는 서울에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만난 덕분에 난 부랑자가 되어 통금에 걸리지 않았다. 구두닦이나 거지 소굴에 들어갔더라면 따뜻한 잠자리는 고사하고 배 부르게 밥을 먹지 못했을 터인데, 병준이 아저씨 덕분에 따뜻하게 보냈으니 내게는 고마운 은인이다. 어느 날 병준이 아저씨가 내게 말했다.
“영광아, 언제까지 나랑 지낼 거니? 남자는 기술이 있어야 밥 굶지 않고 산다. 버스 회사 차 수리하는 곳에
가서 차 고치는 기술을 배워라, 내가 부탁했다. 넌 부지런하고 눈썰미가 있으니 잘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난 병준 아저씨의 도움으로 버스 회사 차 수리 센터에 가서 기술자 밑에서 공구도 갖다 주고 허드레일 하면서 2년 넘게 일했다. 열일곱살 되니 오일교환이나 간단한 수선을 할 수 있었다.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 몇 푼 받아 모았으나 양이 차지 않았다. 18세에 버스 운전을 틈틈이 배웠다. 한글은 깨쳤으니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틈틈이 차 수선 하는 일을 배워 월급도 제법 받았다.
20세에 군 입대하느라 낙향했다. 부지런한 편이니 군대 생활은 어럽지 않게 3년을 보냈다. 제대 후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 있었다. 차 부품이 외제가 많았다. 영어를 모르는 까막눈이라 도통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전자가 나오다 보니 한글만 겨우 깨진 나는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이 휴지 조각이 되었다. 일어나 영어를 배워야 그 영역의 기술에 접근이 가능했다. 전자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내게는 풀 수 없는 난제였다.
버스 고치는 수선센터에 찾아오는 버스 기사들의 얼굴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 쉬쉬하지만 서울역에서 굴러먹은 난 기사들이 월급보다 부수입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꿍친 돈을 쉬쉬하며 버스 수선소에 맡기거나 근처 구멍가게에 수수료를 주고 맡기는 것 같았다. 내가 버스를 타고 병준아저씨 집에 가는데 몇몇 승객이 현금으로 요금을 내자 버스 기사가 다리를 긁는 척하며 양말에 현금을 꼬불치는 현장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cctv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버스 기사들 사이에 관행이 되어 있었다.
버스 기사가 부친 상을 당해 펑크를 냈다. 운전면허증이 있는 내가 기사 대신 버스를 운전했다. 그 후 빠진 기사들 자리는 내가 버스를 운전했다. 2년 후 하늘색 제복을 입은 정식 버스 기사가 되었다. 나도 다른 기사들처럼 적은 돈을 꼬불쳤다. 배운 거 없지만 돈 버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이십 대 중반의 버스 기사인 나는 승객들에게 밝은 인상을 주었다. 인사성 밝고 젊고 잘 생긴 기사로 평이 자자했다. 승객들은 내가 입은 하늘색 제복이 잘 어울린다며 밝게 웃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