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연재 ] < 중독되었다 > 유정 이숙한
음식 솜씨 좋은 아내에게 모처럼 따뜻한 밥 한 끼 얻어먹었다. 밥값이라도 해줄 요량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상추 씨를 밭에 뿌리기 위해 밑 작업으로 거름을 펴고 밭을 갈아엎었다. 큰 돌을 골라내고 흙덩이를 깨뜨려 부드럽게 부수고 작은 고랑을 내어 상추 씨를 뿌리고 보드라운 흙으로 덮어주고 씨가 잘 발아하도록 물 뿌리개로 촉촉하게 물을 뿌려주고 집을 나왔다. 2주일 만에 집에 갔지만 우린 서로 말을 건네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이나 2주에 한 번 집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작은 방에서 자고 집을 나왔다. 언제까지 물에 뜬 기름처럼 그 집에 살 수 없었다. 앞으로 살 궁리를 해야 했다.
서울에서 하늘색 제복을 입고 시내버스 기사 할 때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면서 두 아이를 양육하려면 교육비가 만만치 않으니까 아이들 교육을 시키며 돈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집도 주고 통장에 든 많은 돈도 다 주고 왔다. 애들 엄마는 나와 헤어져 살고 있던 집을 팔고 건물을 사더니 재테크를 잘해 큰돈을 만들었고 아이들은 잘 키워냈다. 두 아이는 공부를 잘해 4년제 대학을 나와 교육 공무원이 되어 밥 걱정하지 않고 살며 결혼했다. 난 자식들 결혼식장에 초대받지 못한 비운의 아버지다. 아이들에게 자식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다.
애들 엄마와 헤어져 월세 방을 얻어 혼자 자취하며 서울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며 몇 년을 보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젊은 나이에 노조위원장이 되었다. 노조위원장이지만 사무장이 똑똑해서 잘 내 생각대로 꾸려나갔다. 기사들 편에 서면 일을 잘했지만 회사에서 볼 때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으나 그런 사실을 인지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임기가 만료되어 노조위원장을 그만두었으나 회사에서 교묘하게 일을 만들어 회오리에 말려 들었다. 결국 버스 회사를 그만두게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다른 버스 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노조위원장을 한 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번번이 채용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버스 기사로 취직이 되지 않아 고향으로 내려왔다. 다행히 지방은 버스 기사 자리가 한 자리 있었다. 사십 대를 버스 기사를 하며 보냈다. 물론 돈도 챙기면서 내가 운전하는 버스에 탄 여자들 중에 낯익은 여자가 몇몇 있었다. 여자들은 내가 들려주는 음악에 취하고 말이 없는 내게 취했다. 몇몇 여자는 자취방을 찾아와 먹을거리를 챙겨주었다. 여자들에게 내 인기는 식지 않았다. 혼자 살아도 남자로서 풀 것은 풀어야 했으니 괜찮아 보이는 여자와 만나며 맛있는 것도 먹고 궁한 것도 풀었다.
그중에 한 여자는 남편이 있는 여자로 내게 반했다. 남편에게 여자로 대접받지 못했지만 내게 황후처럼 지극정성으로 잠자리 봉사를 받으니 행복했다. 우리는 자주 만남을 가졌고 여자는 남편과 이혼하고 집을 나왔다.
난 버스 일을 그만두고 가진 돈으로 개인택시를 샀다. 내게 오기 위해 남편과 이혼한 여자와 친구로 지내면서 자주 만나 맛있는 점심이나 저녁도 먹고 궁한 것도 서로 풀어주었다.
어느 날 사십 대 중반의 여자가 택시에 탔다. 날씬하고 외모도 봐줄 만했는데 어딘가 슬픔에 젖어있었다. 많이 지쳐 보였고 외로워 보였다. 여자를 목적지까지 태워다주며 여자를 위해 좋아할 만한 음악을 틀어주었다. 여자가 슬픔 속에서 잠시 걸어 나왔다. 여자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고 미망인이었다. 여자가 내릴 때 바리바리 싼 짐도 마당까지 내려주었다. 여자가 고마워했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묘한 기분이었다. 여자는 날씬하고 목소리도 곱고 매력이 숨어있었다.
나와 오랜 잠자리 친구인 여자와 여전히 밀회를 즐겼다. 같이 밥 먹고 모텔에 가서 벗고 누우면 편안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와서 승객이 별로 없는 가을이었다. 숨은 매력이 있어 보이던 여자, 내가 무거운 짐을 시골집 마당까지 내려주었던 여자가 두 번째 승객이 되었다. 우연치고는 신기한 일이다. 여자는 택시에 타더니 무척 반가워했다. 여자가 그날 고마웠다며 점심때가 되었으니 밥을 사겠다고 했다. 우린 조금 떨어진 궁평항으로 가서 칼국수를 먹고 바다 위 테크길을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