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연재 ] < 중독되었다 > 유정 이숙한
내 택시의 두 번째 승객이 된 여자, 미망인인 그 여자와 친해지고 싶다. 여자가 사는 동네에 승객을 태우고 가게 되면 밭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여자들이란 사내들이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치기 마련이다. 그녀가 아니라도 20년 잠자리 단골 친구가 있으니 그다지 궁하지는 않지만 그녀에게 끌린다.
택시에 탄 승객이 여자가 사는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가슴이 요동을 친다. 멍텅구리 같은 머리는 여자의 생각뿐이다. 여자는 시어머니와 밭에서 상추를 뜯고 있었다. 마침 배도 고프던 차라 상추를 보니 식욕이 돌았다. 차를 세우고 나가서 말을 걸었다. 여자와 친해지려면 시어머니와 친해져야 한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택시에서 내린 날 보더니 반가워했다. 시어머니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누구야?”
“네, 어머니. 지난번에 터미널에서 짐이 많아 기사님 택시를 타고 왔는데, 많은 짐을 우리 집 마당까지 내려주고 가셨어요.”
시어머니가 말했다.
“고맙기로 해라. 점심때도 됐는데, 기사님 찬은 없지만 상추에 점심 드시고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할게요, 어머니.”
내 입에서 어머니란 말이 서슴지 않고 나온다. 희한한 일이다. 마루에 차려진 밥상에 앉았다. 빨갛게 고추장 양념으로 코팅이 된 돼지고기 고추장 볶음을 보니 식욕이 돋는다. 금방 뜯은 싱싱한 상추잎을 펼쳐 밥을 담고 돈육을 올리고 쌈장에 마늘을 찍어 큼직하게 싸 먹었다. 어찌나 맛이 있는지!
시어머니는 맛있게 먹는 나를 보더니
“아이고 기사님이 시장하셨나 보다? 많이 드세요, 우리 아들도 상추쌈에 돼지고기 볶음을 좋아했는데… 우리 아들이랑 나이가 비슷하죠? 이쪽에 오실 일 있으면 꼭 들리세요?”
“네, 어머님. 저도 어머님을 뵈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네요.”
“아이고 저런, 기사님 어머니가 돌아가셨구먼. 쯧쯧….”
“네, 어머니도 바다에 나가 낙지도 잡고 맛도 잡고 밭일하고 평생 일만 하시다 돌아가셨어요.”
시어머니는 내 말에 눈물을 글썽인다. 날 보니 죽은 아들이 생각나는 모양이다. 여자의 시어머니를 보면 우리 어머니가 생각난다. 밥을 맛있게 먹고 일어났다. 시어머니는 시렁에서 무거운 것을 내리려고 하기에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서 내려 줬다.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내 등을 토닥거리며
“우리 아들도 내가 무거운 것을 들면 언제든 달려와서 내려주었는데….”
나는 여자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 여자는 밀물이 되면 물이 빠진 바다에 시어머니와 함께 조개를 잡으러 가거나 밭일을 하는 등 바쁘게 산다. 사십 대 중반의 젊은 여자가 안돼 보였다. 비가 오는 날은 집에서 쉰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비가 오니 여자가 생각난다. 여자도 남자의 품이 그리울 게다. 요즘은 나 때문에 이혼한 여자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다른 여자를 만나느라고 그랬다. 여자친구는 이혼하고 위자료를 넉넉히 받은 모양이다. 날 만나면 의례 모텔비를 낸다. 나도 맛있는 것을 사주지만 20년 만났더니 시들해졌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 아내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싶다. 지난번 여자의 집에서 먹었던 밥이 오래도록 생각난다. 내 나이 사십 중반인데 혼자 밥을 먹으려니 서글퍼진다.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가 시어머니가 집에 있다고 했다. 택시는 내 마음을 읽고 그 집 앞에 서있다. 마침 시어머니가 삽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오더니 밭 고량의 빗물을 빼내고 있었다. 나는 택시에서 내렸다. 인사를 하고 어머니가 든 삽을 빼앗아 빗물이 잘 빠지도록 땅을 파고 골을 내주었다. 흥건하던 빗물이 골을 타고 쏜살같이 내려간다. 시어머니 말이
“아유, 고마워라! 어미야, 기사 양반 오셨다. 얼른 점심상 차리렴!”
여자는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짓는다. 밥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새우젓과 부드러운 달걀찜에서 모락모락 김이 난다. 새우젓으로 간한 달걀찜이 입에서 녹는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가 야릇한 웃음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