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봄 120시간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오늘이 25년 6월 25일인데 64시간 이수한 셈이다.
이제 56시간을 남겨두고 있다. 그중 16시간은 어린이집에 가서 현장실습수업이다.
강의가 어찌나 좋은지 아이들 키울 때 알았다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의 매란 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부모가 아이에게 매를 드는 건 아동학대다. 욕을 하는 것도 언어폭력이다.
베이비 부머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유교적인 틀인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 말씀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엄한 가르침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사랑의 매가 존재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 심부름으로 함흥차사였다. 화가 난 엄마가 때린다고 하면 잽싸게 도망쳐서 한 번도 사랑의 매를 맞아본 적이 없다.
바로 아래 동생은 도망가지 않고 고집 피우고 앉아있어 막냇동생 것까지 3인분의 매를 맞은 적 있다.
엄마가 심부름 보내면 늦게 왔다며 아버지에게 날 때려주라고 하면 울 아버지는 날 보고 웃으며
"나도 우리 어머니한테 맞지 않고 컸는데 때리긴 뭘 때려!"
하며 날 보고 웃으셨다.
엄마가 내게 건너 마을에 심부름을 시키면 매번 함흥차사였다.
엄마는 농사일에 바빠서 쩔쩔매는데 동생이 둘이 있는데 챙겨주지 않고 까맣게 잊었다.
심부름 갔던 동네의 여자친구들과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놀이하느라 바빴다.
그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하다 보면 해가 저물어 집으로 날아왔다. 그때마다 엄마의 속이 문드러졌다.
엄마는 논이나 밭에서 오밤중에 돌아와 저녁밥을 짓고, 집 청소도 해야 하고 어린 동생들도 챙겨줘야 했다.
그러니 어리지만 내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난 엄마의 일상에 도움을 주지 못했고 화를 돋운 장본인이다.
엄마가 바깥이 그렇게 좋으면 집에서 나가라고 매를 드는 척하면 행동이 빠른 나는 잽싸게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쇼였다. 밖으로 도망가는 척하다 재간 옆 울타리로 숨어들어 할머니 방에 숨었다.
할머니 방에 군불을 지피기도 했다. 엄마에게 혼이 나면 할머니 방에 날 재워주셨다.
엄마도 겁만 주었지 때리고 싶지 않았지만, 내 버릇을 고치려고 겁을 준 것이었다.
3살 아래 여동생은 도망가지 않고 고집 피우고 앉아있다, 막내 동생 것까지 3인분의 매를 벌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동생에게 미안하다. 하긴 나도 철이 없던 어린 나이였으니 돌이킬 수 없는 과거다.
나중에 동생 만나면 미안하다고 해줘야겠다.
사랑의 매는 지금 시대에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어린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해 주는 차원이기도 하고 세월이 변했기 때문이다.
아이 돌봄 사 120시간 교육 이수 후 시험 보고 수료증 받으면 어린이집에 배정된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많이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려고 한다.
아이들 키우면서 몰라서 하지 못한 것을 그 아이들에게 정성으로 쏟아부으려고 한다.
아이들과 만나면 동화 쓰기도 쉬워질 거 같다.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