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연재) 모태 솔로

16. 가련한 인생이 아닌가?

by 유정 이숙한

낮과 밤을 꼬박 새우며 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더니

돈을 딴 사람은 없고 공부방을 연 주인장만 고리를 뗀 수입이 짭짤했다.


- 가랑비에 옷 젖는구나! 형씨 또 화장실 갔수! 지난번처럼

끗발이 오를 때가 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야?"

사내는 찬수를 생각하는 척 은근히 갈군다. 찬수는 오기가

발동해 1점당 오천 원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1점당 오천 원으로 올리고 몇 판 지나지 않아 찬수 앞에

쌓인 돈이 빈곤한 바닥을 드러냈다.


굴뚝을 등지고 앉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전문 타짜들은 화투 몇 장을 옷소매에 지니고 다닌다.


그런 눈 속임을 모르고 있는 찬수였다. 지난번 뒷돈을

대주던 형이 껌딱지처럼 옆에 붙어 있다.


점수가 나면 2배로 갚아 준다고 큰소리친 그였는데 앞이

캄캄하다. 따기는커녕 오히려 또 꿔줘야 할 판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선배다.


돈을 잃자 선배 형에게 꾼 돈 오백만 원이 넘었다.

찬수는 일행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 화장실에 가지 않았더니 점수가 나지 않네? 이번 판은

쉬고 잠깐 물 좀 빼고 와야지.


뒷문으로 나가 담뱃불을 붙이고 피우는 척 입에 물고

좌우를 살핀다. '요땡!' 줄행랑을 치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오른쪽 귀를 확 낚아챘다.


주먹이 날아오고 번개가 쳤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왕년에 주먹 대장인데 얻어맞다니…?


찬수가 주먹을 되받아치려고 하자 멱살을 잡히고 말았다.


지난번에 뒷돈을 대준 형인데. 돈을 따고 갚지 않고 날랐다.


이번에는 돈을 따면 2배(따따불)로 준다는 말에 또 속아

돈을 또 꾸어준 형이다. 공부방을 제공한 주인공이기도 했다.


남자 체면에 비겁하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어

일주일의 말미를 벌었다. 집에 가서 땅문서를 잡혀 대출을

받아 갚겠다고 큰소리쳤더니 거머쥔 멱살을 놓아주었다.


노름빚을 빌려준 빚쟁이들이 돈을 받기 위해 찬수의 집

앞에 잠복근무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애꿎은 두 노인을 괴롭혀 봤자 돈 나올 구멍도 없다.


양심을 가지고 사는 죄 없는 노부만 속이 끓어 속병을 얻고

드러누웠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이 없는 막내아들

때문에 화병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있을 뿐.

무심한 세월만 덧없이 흘러갔다.


채권자들이 지쳐갈 때쯤 남루한 차림의 그가 나타났다.

막상 찬수를 잡아보니 쌍방울에 빈 주머니만 덜렁거린다.


콩밥 먹으라고 감방에 처넣어봤자 나올 것도 없으니 반쯤

포기했는지 하나 둘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찬수는 채권자들의 속셈을 훤히 꿰고 있었다.

다만 동네사람들이 자신을 보면 혀를 차는 모습이 싫어

밤에만 집에 들러 속옷이나 갈아입었다.


그는 백주대낮에 얼굴을 들고 집에 들어갈 만큼 뻔뻔한 인간은 아니었다.


벌써 두 해째, 집에서 밤을 보내지 못하고 자재창고가 있는

건재상 컨테이너에서 새우처럼 쪼그리고 자다가 일이 들어오면 일터로 나갔다.


찬수는 타고난 미장이다. 손재주는 타고 난지라 공사장에서

벽돌이든 돌이든 손만 댔다 하면 깔끔하게 마무리를 잘했다.


손재주만 늘은 것이 아니라 술 한 잔 들어가면 남에게 시비를

걸어 툭하면 싸우고 기물을 부시고 돈 물어주는 것이 다반사요,

특기는 음주운전의 대가였다.


밤늦게 음주 운전하면서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교통경찰도

모르는 샛길이나 농로를 어찌 그리 잘 아는지!

밤눈이 밝은 것은 생쥐 다음으로 가면 서러운 사람.


알코올 기운이 없으면 그야말로 새색시다.

예쁜 여자들 얼굴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숙맥 같은

사람인데 술 이 몇 잔 들어가면 객기를 부르면서 호통을 친다.


그렇게 많은 돈을 만지고 변변한 옷 한 벌이 없었다.

십팔 년 세월에 양복 두 벌이 전부이고 여우 같은 마누라도

토끼 같은 자식도 없다.


그에게 즐거움이란 단어는 손님이었다.

돌아온 싱글도 있은데 아직껏 호적에 총각 딱지를 떼지

한 사람 찬수 말고 또 있을까?


타향을 전전하며 흙먼지 시멘트 먼지 뒤집어쓰면서 번 돈을

그림책 읽느라 한 입에 털어 넣은 가련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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