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연재) 모태솔로

17. 나무 심기 대장

by 유정 이숙한

찬수가 나이 들어가며 형을 닮아가는 건가


형은 술만 먹으면 여자에게 시비를 걸어 때려서 돈을 물어

주고 합의를 봤는데 그건 순전히 노부모님의 몫이었다.


형을 답습하는 것인지 못된 술버릇까지 생긴 그였다.

술 몇 잔 걸치면 잘난 남자와 눈이 마주치면 시비를 거는 병에 걸렸다.


이름하여 병명이 <여우 증후군>이었다. 착한 여우를 만나면 나을

병이라고 하지만. 어디서 그런 착한 여우를 찾는단 말인가?


미련한 것 청설모를 닮은 것인지, 알밤을 발견하고 땅속에

묻고 영역 표시를 한다.


소나무 밑에 숨겨둔 먹이 창고를 잃어버린 청설모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으며 먹이를 묻고 매일 영역 표시하지만.

너무 표시가 많아 찾지 못한다.


청설모가 묻은 먹이 창고에 도토리나무가 자라고 밤나무가

자라게 하는 천하의 나무 심기 대장이 청설모이고 찬수였다.


P시 A읍에 찬수가 즐겨 찾는 주막이 있었다. 탁자라야

예닐곱 개가 전부인 주막이지만 주모는 음식 솜씨도

그럭저럭 쓸만하고 뒤끝이 없고 싹싹해서 사내들이 모여들었다.

주모 혼자서 주막을 꾸려 가는데 나이는 사십 중 후반쯤

되었

으니 찬수보다 대여섯 살 아래였다.


찬수는 주막집에 들러서 공사 팀 식구들과 식사를 하고

술도 몇 잔 했다. 거치적거리는 남편도 없고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주막집이었다.


찬수의 기이한 버릇은 과수댁 혼자 운영하는 술집이나

카페, 식당 냄새를 사냥개처럼 용케도 잘 맡는다.


주막에 몇 번 드나들며 얼굴을 익혀두었다.

주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술을 마셔도 객기를 부리지

않고 최대한 점잖은 척 연기를 했다.


여자 혼자 장사하려니 집적대는 인간들과 술 처먹으면

지랄병 도진 인간들이 간혹 있는 법, 술을 취급하는 업소

에서는 흔한 일이다. 주막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비싼 술안주가 홍어삼합이라지만 있는 폼 없는

폼 잡느라 좋아하지 않는 홍어를 시켜 먹는 위인들이 더러 있다.


막힌 코가 뻥 뚫리게 하는 암모니아 냄새에 환장하고 처먹는

인간도 더러 있지만. 삼키지 못하는 얼간이도 있었다.


저렴한 가격의 돼지국밥에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며 공사장

에서 하루를 보낸 일을 안주 삼아 떠들어댔다.


그들에게 진짜 안주는 모여서 떠드는 잔소리였다.


공사장 인부들은 돼지국밥에 소주나 막걸리와 돼지

머리고기를 시켜 새우젓에 찍어 먹으면 주머니가 넉넉지

않아도 행복했다.


‘홍탁’이라고 항아리에 짚과 소금을 넣고 삭힌 퀴퀴한

냄새가 술을 부른다.


잘 삭은 홍어와 된장과 생강, 소주를 넣고 삶아 기름기

잘잘 흐르는 삼겹살 수육. 눈이 질끈 감기는 시큼한 묵은지

와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내왔다.


보기만 해도 행복에 겨운 눈웃음이 절로 터진다.


코가 찡긋하게 톡 쏘는 홍어와 부드러운 수육을 시큼한

묵은지에 싸서 한입 가득 입안으로 밀어 넣고 시큼털털한

막걸리를 곁들이면 ‘카’하고 목구멍이 호사한다.


찬수의 오십 평생이 그렇고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힘든 인생살이도 그 속에 녹아있다.

어떤 인간은 홍어삼합 대(大) 자로 주문해서 막걸리랑

맛있게 처먹더니 우쭐대던 기분은 어디 가고.


소주보다 더 취하는 것이 막걸리인 줄 몰랐나?

취기가 오르자 큰 소리로 주문할 땐 언제고 돈을 낼 때가

다가오니 주머니가 떨리는지 하나둘 화장실에 간다고 꽁무니를 뺐다.


용케 끝까지 남아 있던 한 놈이 마저 도망가려고 한다.

돈이 없으니 목을 따가라는 어쩌겠나? 엄동설한에 홀랑

벗겨 벌거숭이로 밖으로 내 보낼 수도 없고.


그나마 몸에 금붙이라도 지녔으면 그거라도 잡겠지만.

그건 운이 좋을 때 하는 얘기고.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쌍방울만 덜렁거리는 인간을 어디에나 쓸까나?

씨받이로 쓸까나, 행랑채 서방으로 쓸 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멍석말이를 할까나, 이래저래 술장사 밥장사라는

것이 그래서 하기 힘들다고 하는 게지.


어떤 인생은 주모를 눈치 보며 살짝 꿍 살인적인 미소

지으며 외상장부에 출근 도장 찍는다.


일하고 노임 받은 돈으로 외상값을 계산하러 오더니

외상값 갚고. 치부책에 외상값 완불이라고 찍찍 두 줄

그은 것을 보며 좋아라 했다.


그날만큼은 으스대며 목에 힘주는 인간이다.

주모는 외상값 갚았다고 공짜 술 한 병 내준다.


공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얼간이, 외상값을 갚고 나니

마음은 날아갈 것 같은데, 힘들게 번 돈 제대로 만져보지

못하고 주머니를 이탈해 나가더니 주모 주머니에 꼭꼭

숨어들었으니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술주정이다.


주모는 아는지 모르는지 온갖 투정을 받아준다.

얼간이는 공짜 술에 취해 푸념하다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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