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 < 모태솔로의 사랑이야기 > 유정 이숙한
고등학생인 찬수가 교문을 빠져나가 골목길을 간다. 같은 반 친구인 정애가 날라리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짓궂은 수작에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본 찬수는 달려가서 젊잖게 말했다.
- 이거 봐, 친구들 그냥들 가시지? 어서 꺼지지 못해, 그 손 놔줘?
그 말에 날라리 남학생들은 코웃음을 치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중에 덩치가 제일 큰 녀석이 덤벼보라는
신호를 보내며
- 어쭈구리! 어디서 굴러온 개뼉다귀야,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오래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날라리 남학생들이 덤비자, 찬수는 교복을 벗고 러닝셔츠 바람에 4:1로 붙었다. 그는 차례로 한 놈씩 받아넘겼다. 라이트 펀치를 피하며 레프트 주먹을 날려 쌍코피를 터트렸다. 연이어 두 놈을 넘어뜨리자 한 놈은 겁을 먹고 줄행랑을 쳤다. 의기양양해진 찬수는 정애에게 교복을 건네받고 으쓱해한다. 그 일이 있고부터 두 사람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녔다.
농고 3학년 여름 하교 길이었다. 주위가 컴컴해지며 번갯불이 번쩍 춤을 추고 우루룽 쾅쾅, 천둥소리가 나더니 소나기가 퍼부었다. 정애와 찬수는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빈집 추녀 안으로 들어갔다. 정애의 하복이 몸에 달라붙어 하얀 속살이 비쳤다. 그 순간 찬수는 온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의 떨리는 입술은 정애의 입술에 닿아 있었고 정애는 사시나무처럼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어색한 정적이 지나갔다.
찬수의 아랫도리가 굳어졌다. 정애가 그만 실수로 찬수의 발등을 밟았다. 그의 굳어진 몸이 부스스 깨어났다. 그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부끄러움에 쏟아지는 빗속을 마구 뛰었다. '정애는 입술 도장을 찍었으니 내 여자다' 하며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빗소리인지 찬수의 외침인지 도통 분간할 수 없었다. 찬수는 숙맥이라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갈래머리 용숙은 그를 짝사랑했으나 받아주지 않자 다른 사내에게 시집갔다. 찬수네 가족은 바다를 막은 간척지로 이주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찬수는 정애와의 추억이 영화 속 장면처럼 살아났다. 귀밑까지 빨개지고 가슴이 뜨겁다. 정애도 찬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차를 몰고 찬수의 동네로 찾아왔다. 파란 대문이 보이자 정애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집 앞에 도착했다. 그의 오토바이는 보이지 않고 세발자전거가 있다. 예닐곱 살 먹은 사내아이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튀어나왔다.
-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정애가 비끼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탄 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 아줌마는 누구야! 어디서 왔어, 저 차 아줌마 차야?
정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본다. 찬수와 닮은 것 같은 얼굴이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찬수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단 말인가? 나한테 불만 질러놓고 야속한 사람같으니라고?' 정애가 묻다.
- 얘, 너 이 집에 사니?
- 응. 여기가 우리 집이야. 왜 물어?
사내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정애를 바라본다.
- 네 아빠 이름이 이찬수 씨니?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아이는 의아해 하며 아빠가 있는 곳을 가르키며 묻는다.
- 우리 아빠 이름은 왜 물어, 저기 과수원에 있어..
사내아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사내아이의 아빠는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찬수가 아니었어? 다행이다.' 정애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 저어! 이 집에 사세요, 전에 이 집에 살던 분들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이 아빠는 의아해하는 얼굴로 정애의 눈치를 보며
- 그분들 강 건너 동네 간척지로 이주해 갔는데… 작년에…?
돌아서는 정애의 발길이 무겁다. 정애는 강 건너 간척지 마을로 길을 재촉했다. 마을에 도착했으나 찬수는 지방에 공사가 있어 떠나고 없었다. '정애는 찬수와의 인연은 아닌 건가?'허탈하게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