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 모태솔로의 사랑이야기 > 유정 이숙한
1999년 봄이다. 찬수는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이루지 못해 뒤척인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한 살 더 먹은 서희가 눈에 아른거리며 밟힌다. 그녀가 그의 동네로 이사 온 지 십 년인데 그 집으로 발길이 가는 이유가 뭘까. 사귀던 여자와 친구라서 그런 걸까?
사랑을 찾는 개구리들은 논두렁에서 짝을 찾느라 밤새 떠들어대고 뒷산 뻐꾸기도 밤낮없이 ‘뻐뻐꾹 뻐꾹’ 무엇이 그리 급한지, 반박자로 짝을 부르는 걸까, 2박자씩 끊어서 부르는 게 원칙인데..
그는 여자친구와 인연이 이어졌다면 애가 둘쯤 되었을 텐데 어쩌다 보니 노총각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찬수는 오토바이를 타고 간척지 논으로 달려갔다. 들에 있서도 뻐꾸기들은 여전히 시끄럽게 짝을 찾느라 떠들어댄다. 그러자 그가 씩씩대며
- 어유, 저놈의 뻐꾸기까지 약을 올리나, 장가들고 싶으면 지나 들지, 늙은 총각 복장을 터트리나, 누구 죽는 걸 보고 싶은 거야?
일전에 모내기를 한 논에 물고를 다독거리며 괜스레 삽자루를 논둑에 꽂았다 뺐다 한다. 습관처럼 강 건너 평택평야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뻐꾸기가 또 운다. 아카시아꽃 향기가 그윽하다.
그도 봄을 타나보다, 봄이 되니 마음이 산란하다.
- 야유 제기랄, 이놈의 봄날은 왜 이리 사람 마음을 짓쑤셔 놓나. 뻐꾸기가 우는 걸 보니 봄도 어지간히 저문 모양이군. 이놈의 아카시아는 왜 이다지 향기로운 거야, '소쩍새다방' 미스 양 머리에서 나던 냄새랑 똑같네!
뻐꾸기가 숨을 고르더니 애처롭게 짝을 찾는다. 간척지 넓은 논에는 연초록 벼들이 팔랑거린다.
- 미스 양의 풍만한 가슴은 목련꽃 봉오리처럼 터질 것 같았는데, 아양을 떨며 내 품에 와락 안겼는데….
그는 담배 한 개비에 붙을 붙이더니 입에 문다. 담배 맛은 예나 제나 그 맛인데 찬바람이 부는 계절에도 혼자, 꽃피는 봄이 와도 혼자니 공연히 살고 싶은 의욕이 떨어졌다. 흙덩어리 하나를 발길질로 툭 차내니 남의 논에 나가떨어졌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수하고 머리도 감고 수염도 정리하고 하얀 Y샤스에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그 위에 파란 양복을 걸쳐 입는다. 애수에 찬 눈으로 거울을 보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대문 밖에는 애마가 대기하고 있다. 4년쯤 된 중고차지만 새 차나 다름없다.
그가 자동차를 사기 전엔 인근에서 알아주는 착실한 총각 농부였다. 불과 4년 사이에 겉멋이 잔뜩 베인 어정쩡한 사내가 되었다. 서른다섯까지 농사도 잘 짓던 그였는데 작업복에 물장화 대신. 번쩍번쩍한 윤이 나는 구두를 신고 덥수룩한 단발머리를 뒤로 묶었다. 얼핏 보기에 화가처럼 보인다. 그는 유행가 <미스 고> 휘파람으로 구성지게 부르며 읍내로 나갔다. 맞선을 스무 번이나 봤는데 맘에 드는 여자가 없다. 그는 결혼에 대해 관심이 없는 걸까, 1990년대에는 대부분 20대 중후반에 결혼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그 순간이 즐거우면 그만이다. 결혼은 그의 심리를 모르는 동리 사람들 걱정이며 평가일 뿐이다.
봄밤이면 첫사랑 정애가 더 생각난다. 또래 친구들은 초등학생 자녀가 있다. 길에서 친구를 만나면 오래 굶주려 뻥 뚫린 뱃속처럼 시리다. ‘사십이 가까워지니 철이 드는 건가?’ 생각하는 그였다.
이십 대 전후에는 미남형이라 4H 클럽 여자 친구들의 물망에 오른 자신인데 다방이나 실내포장마차 마담이라니… 잘난 여자들도 아니건만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 주면서 비위를 맞추는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찬수는 서희를 보면 마음이 편하고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진다. 서희의 남편 호준은 서울 태생이라 시골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툭하면 술을 마시고 읍내 술집을 부수며 싸움판을 벌인다. 그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농고 재학시절 이성 간에 미묘한 감정 없이 보호해 주고 아끼던 정애라는 여고생이 마음 깊은 곳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쯤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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