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 모태솔로의 사랑을 이야기 > 유정 이숙한
2012년 봄이다. 살아생전 주변에 친구가 많았던 그가 이렇게 쉽게 이승을 등질 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커피인심이 후한 그는 읍내 다방에 가면 커피 여섯 잔이 기본이다. 그가 말하길 누구는 입이고 누구는 주둥이냐며, 혼자 마실 수 없다며 다방종업원 모두에게 커피를 사줬다.
공사현장에서 힘들게 번 돈을 아가씨와 함께 보낸 시간만큼 계산해 준다. 같이 보낸 시간을 돈으로 주면서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 때론 씁쓸했지만 돈을 벌면 나눠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는 화투치기를 무척 좋아했다. 동네에 초상집이 생기면 줄초상에 났다. 그건 왜일까,
그는 세상에 머무는 동안 한 여인을 사랑했다. 그녀를 향한 사랑의 꽃을 활짝 피우고 살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워했다. 하지만 그 여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했다.
그의 영정사진 앞에 커피를 올리는 여인이 있었다. 고스톱의 대가인 찬수, 여러 문상객들 틈에 끼어 화투를 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그녀가 왔지만 모르고 있다. 여동생이 술잔을 비우며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동거녀를 피를 토하듯 저주하는 말이 클로즈업되었지만 애써 못 들은 척하는 그였다. 여동생이 서희에게 소주를 한 잔 따라주면서 말했다.
- 우리 오빠가 언니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거 아세요?
그 말을 들은 서희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토록 좋아했으면 말을 하지? 말을 하지 않으니 알 수 있나?'
서희는 회한에 젖는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가슴에 품었던 여인.. 서희가 타준 커피 향에 취해 더없이 행복한 찬수다. 좋아하던 화투짝도 팽개치고 서희가 타준 믹스커피 향에 취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 속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그는 25년 동안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여자는 가정이 있고 남편이 있는 사람이었다. 찬수가 서희를 사랑하는 건 운명이었다. 이루어질 수 있는 타이밍이 딱 한 번 있었다. 공사장에서 일하느라 오늘 내일 모레.. 미루다 보니 그 사랑을 이룰 기회를 영원히 놓치고 말았다.
사랑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사랑을 품고 살지만 그 마음을 전할 수 없으니 외롭고 괴로웠다. 서희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그였다. 그가 떠나기 전 서희의 얼굴을 보러 왔다. 서희가 소금 몇 알갱이를 넣고 타준 믹스 커피를 마시며 찬찬히 그녀의 얼굴을 기억 속 창고에 저장한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서희가 그와 맺어졌다면 그는 세상을 등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영혼은 서희의 꿈속에 이따금 나타난다. 죽음이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놓았지만 그의 사랑은 영원불변하다. 서희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달려온다. 그는 서희를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살았다. 그건 짝사랑이 아니었다.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그녀도 인간적인 면이 있는 그를 좋아했다. 서희가 이혼하고 지방에 살고 있을 때 그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찾아가겠다고 말했으나 그는 찾아가지 못했다. 서희는 호준이 그를 시켜 안부전화를 묻게 한 줄로만 알았다. 그가 그립고 보고 싶어서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전화를 건 줄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랑을 염원하는 사람은 사랑을 이룰 타이밍이 주어진다. 그가 서희에게 찾아가려고 했을 때 그녀는 제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서희가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