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 모태솔로의 사랑이야기 > 유정 이숙한
33세 찬수는 교회도 잘 다니고 농사도 잘 짓는 착실한 총각 농부였다. 주위의 소개로 맞선을 스무 번이나 봤지만 맘에 드는 처자가 없었다. 처녀 농부도 만나보았지만 그의 마음에 끌리지 않았다. 그의 마음에 첫사랑 정애가 아직 살아있는 걸까, 정애는 잊혔고 그 자리에 다른 여자가 꽈리를 틀었다. 새벽 6시면 오토바이를 타고 논에 갔다 온다.
모친은 아침 7시면 거실에 조반을 차려놓았다. 반찬이라야 장아찌와 김칫국과 두부 전이 전부지만 평생을 그 시간을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다. 그는 조반을 먹고 호준의 집으로 건너갔다. 호준이 배달을 나갔는지 집에 없었다. 서희가 타준 커피를 얻어 마시고 싱겁게 그 자리를 떴다.
어느 날 서울에서 이사 온 야무진 아가씨가 교회에 나왔다. 비슷한 연배다 보니 뜻이 잘 맞았다. 성가대도 하며 친하게 지내다 보니 정이 듬뿍 들었다. 이해심이 넓은 연희와 사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연희가 임신을 했다느니, 하지 않았다느니 소문이 무성했다. 추수를 마치고 가을이 되었다. 양가를 오가며 둘의 혼담을 다리를 놓았다. 그의 모친은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똑똑한 연희가 싫지 않았다. 가끔 그의 집에 놀러 와서 놀다가기도 하고 밥도 먹고 갔다. 연희의 부친은 유교였고 꼬장꼬장한 선비 타입으로 그를 사윗감으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런 말을 중매자로부터 전해 들은 모친은 기분이 상했다. 세상에 막내아들 찬수가 최고인 줄 알고 사는 모친이다.
연희의 아버지가 찬수와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한 살 연상이라기보다 사윗감이 직장이 아닌 농업에 종사하니 장래성이 없다고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의 노모가 연희 부의 심정을 전해 듣고 노여워했다. 세 아들 중에 막내인 찬수가 착실하고 부모 속도 썩이지 않아 자식 중 으뜸이라고 생각한 모친이었다.
연희는 농사짓는 것도 좋아하고 목축업인 낙농을 특히 좋아했다. 둘이 만나면 낙농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뜻이 잘 맞았으나,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 사랑에 진득하지 못했다.
양가 부모의 자존심 싸움에 그들 사랑이 결혼으로 매듭이 지어지지 않고 깨지고 말았다. 연희는 목축업을 하는 회원 중에 착하고 순한 남자에게 시집갔다. 찬수의 형 찬동은 술만 먹으면 여자를 때려서 고소를 당했다.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서 피해자와 합의하느라 찬수가 1년 동안 농사를 지어 모은 돈을 한 방에 날렸다.
그가 죽어라, 농사를 지으면 뭐 하랴! 결국은 형의 합의금 명목으로 한입에 털어 넣는 것을.. 몇 년을 농사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이 되었다.
그 바람에 찬수는 농사일에 차츰 흥미를 잃어갔다. 죽어라 일해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1년 치 수입. 그는 시대 흐름에 맞춰 한 푼 두 푼 쓰지 않고 모은 돈으로 제법 쓸 만한 중고차를 샀다. 자가용을 굴리며 헌신짝처럼 버리고 간 연희에게 궁상을 떠는 노총각이 아닌 멋진 남자로 보이고 싶었다. 막상 자가용을 사고 나니 옆 좌석이 허전했다. 문화 혜택이 없는 시골로 도시 여자가 시집을 올 형편도 아니고 기왕지사 태어났으니 즐기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집에서 자동차로 8~9분쯤 떨어진 읍소재지는 하루가 다르게 새 건물이 들어섰다. 희한한 일은 2~3층 건물마다 지하에 다방이 들어왔다. 선창 포구가 가까워 어업에 종사하는 자가 많았다. 자동차 회사 원청에 방개 회사도 늘어나고 건축업이 성행했다. 선주들이 늘어나면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사십여 개의 다방들은 제각기 단골손님이 따로 있었다.
그 무렵 찬수도 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낭만을 찾았다. 이상한 버릇은 다방에 가면 커피 대여섯 잔을 주문한다. 대부분 혼자서 온 남자 손님은 기껏해야 커피 한두 잔 시킨다. 그는 농사를 지으며 일류 기술자는 아니지만 벽돌을 쌓는 일이나 벽돌과 벽돌 사이에 덧바르는 작업을 잘해서 인기가 많았다. 제법 높은 일당을 받는 2류 기술자인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