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 모태솔로의 사랑이야기 > 유정 이숙한
그는 쉬는 날이면 읍내 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다방에 오는 남자 손님은 대부분 기본이 커피 한두 잔이다. 손님이 사준 커피를 마시며 허접한 농담을 주고 받는 아가씨의 손을 만지고 허벅지를 주무르는 나이 지긋한 이도 있었다. 어느 순간 찬수도 그런 문화에 전염되었다. 한술 더 떠서 다방에 가면 커피 대여섯을 기본으로 주문한다. 하지만 아가씨의 손을 잡거나 주무르지 않는다.
3천 평 논농사를 지으며 자동차회사에 납품 기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죽어라 농사지으면 뭐 하나? 1년 동안 농사지어 남은 돈을 한 방에 날리는 말썽쟁이 형이 있기 때문이다. 재주는 누가 부리고 돈은 누가 챙긴다고?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었다. 그런 형을 버리지 않고 붙어사는 형수가 가엾어서 두들겨 주고 싶었지만 화를 내거나 툴툴대지 못한다.
그는 회사에 근무하지만 논농사를 게을리하지는 않았으나 사람인지라 흥이 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속이 시끄럽고 답답하면 호준의 집에 들른다. 호준의 처 서희가 타주는 커피 한 잔이 그엑 달콤한 휴식이다. 호준과 그의 형 찬동은 동갑인데 호준은 열심히 살고 있다. 호준이 찬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
호준의 말 몇 마디를 들으니 기운이 난다. 형에 대한 불신인지, 다방 아가씨들과 노닥거리는 일에 재미를 붙인 것인지 정작 본인도 모르고 있었다. 기사 일을 하여 번 돈으로는 품위유지비가 되지 않았다.
타고난 말재주는 없으나 타고난 손재주가 있었다. 바닥이나 벽을 평평하고 고르게 잘 바르므로 건물을 짓는 공사장이 늘어나면서 그의 일감이 밀려들었다. 공사를 맡은 사장들이 그를 부르는 횟수가 늘어났다. 보름만 일해도 한 달 근무하는 기사일보다 수입이 두 배가 넘었다. 주머니가 두둑하니 처진 어깨가 올라갔다.
다방에 가면 종사자들에게 커피 한 잔씩을 돌려야 직성이 풀린다. 공사장 일은 돈벌이는 최고인데 함정이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은 공치는 날이 문제였다.
밀린 노임도 두둑하게 받았겠다 기분을 내려고 콧노래를 부르며 읍내로 향하는 총각농부 님. 장미 다방 앞에 차를 세우고 다방으로 내려가서 푹신한 의자에 엉덩이를 묻었다. 앉기가 무섭게 반색하며 주문받으러 왔다.
- 오늘 새로 출근한 이양이라고 해요. 차 뭐로 드릴까요?
- 처음 보는 얼굴이네, 나 몰라요? 커피 여섯 잔 주세요!
- 네, 여섯 잔요?
이양이 되물었다. 이양은 의아해서 출입구를 본다.
- 누구는 입이고 주둥인가? 이 아가씨가 뭘 모르네? 주방아줌마 한 잔, 이 양, 박 양, 김 양, 마담 한 잔, 나까지 여섯 잔 맞지?
차 인심이 후한 총각농부님을 다방에 첫 출근한 이양이 당연히 모르고 있을 터, 읍내에서는 그의 차 인심을 모르는 다방이 없었다. 다방종사원을 꿰고 있었으니 업소조합장이라고 불렀다.
그는 커피를 마시고 이양을 지목하여 시간 비로 만 원짜리 지폐 다섯 장을 카운터에 지불했다. 한 시간에 만 원인데 마담이 칠천 원, 이양이 삼천 원 갖는 구조다. 이양과 드라이브하며 그럴싸한 횟집에서 민어회에 매운탕까지 먹으며 신이 났다. 4시간 지나고 돌아오는 길에 저녁으로 돈가스도 먹었으나 이양의 손 한 번 잡지 않고 다방 앞에 내려놓고 간다.
헤어진 연희가 생각나지만 애써 그림을 지운다. 하나님이 서희를 배우자 감으로 주지 않은 것이 원망스러워워잘 다니던 교회도 나가지 않고 그만두었다. 서희가 보고 싶으면 그녀의 집에 들른다. 호준은 매 년 아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다. 생일에도 동네 사내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러 갔다.
생일날 남편의 축하도 받지 못하고 허전하게 보내는 서희가 안쓰러운 그였다. 매년 서희의 생일이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맨손으로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서
- 형수님 오늘이 생일이지요? 형님은 또 나가셨어요?
안 그래도 속 시끄러운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러 왔나 화가 치미는 서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