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소설 연재 ] < 사랑학 개론 > 유정 이숙한
그는 십 대에 장티푸스에 걸렸다. 부친이 막내아들을 살리겠다고 영등포에서 마포까지 뛰어다닌 덕분에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삼십 대 초에 폐결핵에 걸려 약을 먹고 나았다. 폐섬유화증은 치료약이 없었다. 감기나 독감에 걸리지 않으면 현 상태를 유지해 주는 약이 있을 뿐. 먹어도 치료가 되지 않는 약이 약이란 말인가? 그는 운명의 삿대질에 폐를 도둑맞았다. 차라리 병을 모르고 살다가 죽는 편이 행복하다고 생각한 그였다.
그녀의 호들갑 때문에 병원으로 끌려가서 병명을 알게 되니 기분이 더럽다. 뭘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다고 운명은 그를 가지고 쥐락펴락하는 건지- 젊은 시절 아내가 생각도 없는데 그의 잘난 물건을 가지고 놀았다. 잠을 재워주지 않고 그의 물건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몸부림을 치던 기억들이 그에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가 입원하기 3개월 전, 고혈압과 간질성폐질환 환자인 것을 부인한다. 순미의 만류에도 듣지 않고 친구가 내준 고급 양주 2병을 대접받아서 기분 좋아 마셨다. 친구 집을 나오자 20여 분 후 호흡곤란이 와서 전철역 입구에 주저앉았다. 순미가 그의 열손가락에서 피를 빼주자 호흡이 돌아왔다. 전철을 타고 가다 내리니 호흡곤란이 또 왔다. 순미가 열손가락에서 피를 빼주자 호흡을 돌아왔다. S대 응급실에 가서 검사한 결과 저체온 쇼크가 왔는데 그게 전초전이었다.
주민센터에서 준 김장김치를 배낭에 집어넣고 언덕을 올라가다 호흡곤란이 온 그를 발견한 그녀가 S대학병원 응급실에 데려갔다. 정밀검사 결과 특발성 폐섬유화증이었다. 3일 입원 후 퇴원했다. 담당교수가 산소처방전을 내주었으나 산소에 의지해 숨을 쉬는 건 인생 끝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며칠 후 수철은 38.5℃ 고열과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피검사 결과 조류인플루엔자 독감에 걸렸다고 했다. 폐섬유화증을 가속시키는 가벼운 감기도 치명적인 살인 행위인데 독감이라니…? 그의 인생이 종지부를 찍는가 보다. 그는 살기 위해 대학 병원에 가기 위해 차들이 빈번히 오가는 6차선 도로에 서 있었다. 시베리아 벌판에 혼자 서 있는 것처럼 춥고 외로웠다.
신촌역 앞에서 S 대학병원셔틀버스를 타고 응급실로 갔다. 조류인플루엔자 독감에 폐렴이 가세한 것이다. 호스를 통해 콧구멍으로 들어온 산소를 들이마시니 살 거 같은 그였다. 흡입기로 좁아진 기도를 넓혀보지만 심한 기침과 발열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 4시간 간격으로 염증 주사와 약물로 폐렴을 진정시켜 보지만 끊이지 않는 기침으로 숨이 막힐 거 같다. 게다가 코 막힘이 가세하여 숨이 멎을 거 같았다. 마약 기침약도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입원 후 10일이 지나니 병증이 진정되었다. 폐활량과 간, 신장 검사 다른 장기들은 양호했다. 그녀가 병상을 지켜주지만 염치도 사치다. 산소 줄에 매달린 운명이었다.
화장실에서 대변을 볼 때 호흡 곤란으로 죽음의 공포를 체험했다. 옛 어른들이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 쓰러져서 죽음을 맞이하는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염증 주사 덕분에 호흡이 편해졌다. 담당교수가 퇴원을 말렸으나 치료비가 부담이 된 그는 퇴원했다. 그녀는 병원의 사회 복지팀을 찾아가 그를 살릴 방법을 찾았다. 폐 이식을 권장해 주겠노라 약속을 받아냈으나 그는 폐 이식은 성공률이 낮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실험용 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각기 다른 병증으로 줄을 선 복잡한 대학병원 복도. 희귀 질환이라 본인부담이 9%다. 병원비 자동 처리기에서 45만 원을 결제했더니 그는 빈털터리다.
택시를 타고 올라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져 누웠다. 그의 몸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으나 그는 알지 못했다. 어떤 죽도 받아들일 수 없다. 살고 싶었다. 폐섬유화증 고쳐 달라고 악다구니를 치며 광화문 네거리에서 일인 시위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순미가 주머니를 털어 먹고 싶어 하던 청폐 한약을 지어 시골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살고 싶었다. 청패 한약을 먹으면 낳을 거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내려간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보라색 핏줄과 곤봉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