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 < 내가 나에게 위로를 > 유정 이숙한
11월 28일 금요일 2025년 병설유치원 근무 마지막 날이다. 보통의 날처럼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생일 맞은 아이 축하해 주고 케이크를 자르고 같이 먹었다. 유희실 바닥을 닦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이 부르셨다. 아이 중 한 명이 아이들이 쓴 아름다운 편지!두루마리를 노끈으로 묶어 내게 건네주었다.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해서 바로 읽고 싶었지만 참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들이 삐뚤삐뚤 눌러쓴 글씨! 너무 예쁘고 아름답다. 세상에 이 보다 귀한 선물이 또 있을까? 아이들이 내게 고맙다고 인사도 해주었다.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20대(1980년)에 유아교사대학에 들어가려고 직장을 다니며 돈을 근근이 모았는데 아버지가 운영하는 생협연쇄점이 매출이 부진하여 연탄도 들여놓아야 하고 공과금도 내고 양식을 사야 하는데 돈이 모자란다며 내가 모아놓은 돈을 빌려달라고 하셨다. 나중에 돈이 모아지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영영 주시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생협연쇄점이 주변에 새로 생긴 대형 슈퍼가 생기자 소비자들이 그쪽으로 몰려가서 연쇄점 매출이 떨어지고 가게가 도산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핫도그와 도넛을 만들어 팔고 과일을 팔며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지만 식구도 많고 수입이 없었다. 내가 직장을 다니다 가게 반을 막아 분식센터를 냈다.
아버지와 어머니, 내 인건비가 나오지 않아 난 회사에 입사하고 부모님께 분식센터를 운영하시도록 했다.
내가 20대에 아이들을 좋아해서 주위에서 유아교사가 되라는 권유를 많이 들었다.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의 밥을 잘 먹이고 아이들과 친했다. 그때 유아교육을 이수할 좋은 기회였는데 놓치고 만 셈이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동화를 쓰고 있다. 육십 대 중반에 그 꿈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 또한 감사하다. 천사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이들! 마냥 철부지가 아니다. 생각이 깊고 친구들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고 인성 위주로 교육을 받는다. 이렇게 꾸밈없이 아름답고 예쁜 아이들이 있으니 우리나라의 미래가 무척 밝아질 거 같다.
유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교육방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작은 일이라도 선생님 마음대로 정하지 않고 아이들의 의견을 묻고 다수 의견에 따라 결정한다. 아이들은 이미 다수결 의견에 따르는 것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하고 너무 귀엽고 예쁘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에게 귀한 편지를 받고 보니 난 누구보다 행복한 할머니 선생님이다. 두 달 후 아이들과 다시 만나길 고대하며 마음속으로 아이들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기도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