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낭아 Oct 21. 2021

흑백 무지개

- 백 한 번째 낙방을 하다


성벽 앞에서

빗나간 화살을 줍는 시간

문지기에게 끌어 댈 암구호는 기한을 넘겼고

꿈 한줄 써 넣고 돌을 치우며 걸어온 너덜길엔

길을 지우며 따라오는 그령풀 무성하고

지뢰를 밟은 듯 놓을 데를 몰라

허공에서 펄럭이는 발 한 짝


모진 중력을 저 높이에 매어두는 힘이

벽의 단단한 이빨에서 기인함을

조금만 일찍 깨달았다면

못, 하나에 절절 매지 않았을 것을

기꺼이 못 박히려 벽을 더듬는 동안

어디 옷 하나 걸지 못해 동동거렸던

청춘의 모퉁이마다 나동그라진 그림자


햇살도 길을 잃는 후미진 골목에서

걷어 찬 돌멩이가 발등에 남긴 죽비소리

인생표지판은 늘 뒷면에 화살표가 있었고

나는 너무 늦게 길을 잃었다


씨 없는 수박을 먹으며 온 탓에

돌아갈 길은 까맣고

눈 뜨고도 눈 없는 쌀을 먹었으니

하얀 손 흔들며 청춘을 놓쳐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