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앞에서
빗나간 화살을 줍는 시간
문지기에게 끌어 댈 암구호는 기한을 넘겼고
꿈 한줄 써 넣고 돌을 치우며 걸어온 너덜길엔
길을 지우며 따라오는 그령풀만 무성하고
지뢰를 밟은 듯 놓을 데를 몰라
허공에서 펄럭이는 발 한 짝
모진 중력을 저 높이에 매어두는 힘이
벽의 단단한 이빨에서 기인함을
조금만 일찍 깨달았다면
못, 하나에 절절 매지 않았을 것을
기꺼이 못 박히려 벽을 더듬는 동안
어디 옷 하나 걸지 못해 동동거렸던
청춘의 모퉁이마다 나동그라진 그림자
햇살도 길을 잃는 후미진 골목에서
걷어 찬 돌멩이가 발등에 남긴 죽비소리
인생표지판은 늘 뒷면에 화살표가 있었고
나는 너무 늦게 길을 잃었다
씨 없는 수박을 먹으며 온 탓에
돌아갈 길은 까맣고
눈 뜨고도 눈 없는 쌀을 먹었으니
하얀 손 흔들며 청춘을 놓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