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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Oct 26. 2021

유리로 지은 집

유리로 지은 집

(내면의 유약함에 대하여)


똥꼬 씻는 물에도 필터를 다는 세상에

뱉는 말에 필터가 없으니 바늘조차 귀를 씻는다.

마음길을 쓸고 연등을 걸었건만

목고개를 넘어온 말은 장미꽃을 꺾어왔다

가시에 긁히는 줄도 모르고 꽃을 안고 한 철을 달려왔다

나이가 들수록 열 것과 닫을 것을 가려야 한다던데

괄약근조차 앞뒤가 바뀌었으니

과묵한 지갑 대신 방귀가 풍월을 읊어댄다.


귓속에 사는 달팽이 갱년기를 앓

듣는 말이 다 거슬리누나

성전 기둥 같은 허벅지 자랑했건만 속 근육이 없어

작은 떠밀림에도 휘청이는 내 마음

계단을 헛디뎌 우당탕 자빠지는 동안

솜 내의 한 벌 못 해 입힌 게 미안하다

까지고 깨져서 철철철 우는 동안

호오 불어 줄 입김 한 줄기 기다리기보다

이제 눈물일랑 말려 한 자락 건어물이라도 되어

누군가의 안주라도 되자

맘껏 씹어 뱉으라고 껌이라도 되자

하고 내려놓았건만


자꾸만 가슴 한이 시큰하여

구들이 새는지 군불을 댕겨 본다

늑골께로 풀풀 새는 연기


동굴로 돌아가 쑥과 마늘을 토해내면

다시 곰이 될 수 있을까?

그러면 이런 상처쯤 혀로 쓱쓱 핥으면 별것 아닌 것쯤 되어 질까?

호랑이는 눈치챘던 걸까?

힘의 부등점을 알아채는 인간의 비상한 감각과

혀 속으로 녹아든 어금니와 발톱을

그래서 동굴을 뛰쳐나간 걸까?

곰의 자식인 탓에 아침마다 창과 방패를 골라 담고도

나는 저 현관문이 고장 났으면 싶다.


이제 고만 따뜻한 입 속 송곳니로나 살고 싶으다.

입술이 막아주는 바람소리 배경음악으로 들으며

앞니로 고기 끊다가 젓가락 씹지 않아도 되고

깍두기 깨물다 굴껍질에 어금니 버석하지 않아도 되고

죽은 고기 먹으니 펄펄 살아 뛰는 목 동맥 꿰뚫을 일도 없는,

아득한 진화의 고생대 중생대 다 지나

아무도 위협하지 못하고 누구도 겁내지 않는

무용의 송곳니로 비켜 앉아

남은 생 그저 안온하게 살고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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