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는 과수원이 하나 있었다. 어릴 때 가을이 되면 엄마는 과수원에 낙과를 사러 가신다. 과수원집 아주머니는 바깥 어른 눈을 피해 공짜로 낙과를 담아주셨다.
매번 얻어 먹기 미안한 엄마는 막내인 내게 천원짜리 한 장을 들려 과수원에 보냈다. 오빠랑 내가 신이 나서 달려가면 과수원 아주머니는 돈을 왜 가져왔냐며 낙과 한 상자를 넘치게 담아주셨다.
엄마가 마루에 사과상자와 과도를 놓아두면, 우리 형제들은 오며가며 하나씩 깎아서 먹었다. 멍들어서 썩은 부위를 도려내면서 먹다보면 나중에는 상자 바닥에 남은 사과는 거의 다 썩어 있곤했다.
비록 낙과지만 우리 형제들이 제일 풍성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고, 지금도 과수원 아주머니를 고마워하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는 썩은 사과를 먹을 일이 없었다. 도시에서 제값 주고 사 먹는 사과는 단단하고 잘 익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냉장고에서 반쯤 썩은 사과를 발견했다. 작은 멍을 미리 도려내지 않아 속이 다 썩어 반 이상을 도려내니 먹을 것이 없었다.
좋은 사과를 먹다보니 이제는 썩은 사과가 낯설고 나태함의 자책감까지 느껴졌다.
멍든 사과가 냉장고를 굴러다닐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니, 썩은 사과가 옆의 사과까지 망치고 있는 것을 그냥 두었다니.
신기한 건, 요즘도 썩은 사과를 고르고 칭찬하고 맛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