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량(李樑)은 태종의 차남인 효령대군의 5대손이고, 명종비 인순왕후의 외숙이다. 정사룡의 제자였지만 과거시험도 보지 않고 빈둥거렸는지, 조카가 왕후가 되자 음서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자 27세에야 초시에 합격하고 음관에 들어섰다.
명종 7년에 스승 정사룡이 시험관이 되자 본시를 보아 급제를 했는데, 이때 정사룡이 시험문제를 이량에게 유출했다. 또 명종 장인 심강이 이량을 홍문록에 추천하자 심강의 부친 심연원이 반대했는데도 정사룡이 적극 추천하여 홍문록에 들게 했다. 이는 명종이 어머니 문정왕후와 외숙 윤원형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명종은 이량을 당상관에 올리고 특진에 특진을 시켰고, 이량은 정유길·고맹영(고경명 부친)·김백균 등과 결탁하여 척신으로 등장했다. 이량의 아들 이정빈이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이량이 이조판서가 되자 상피제에 의해 이정빈은 사간원 정언으로 전직해야 했다. 이때 이량은 이정빈의 친구인 유영길을 이조좌랑으로 추천하였다. 기대승과 허엽(허균 부친) 등 사림 세력이 반발하자 이들을 몰아내려 시도한다. 이감·신사헌·권신·윤백원(윤원로의 아들이자 이량의 외손자)·이영 등과 함께 조정을 좌지우지 하며 육간(六奸)’으로 불렸다.
이량을 추천했던 처남 심강이 이량의 부정부패에 질렸는지 아들 심의겸과 함께 탄핵 상소를 올렸다. 이량은 삼사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 되고 평안북도 강계로 유배되어 선조 15년에 사망했다. 그의 아들인 이정빈도 이량과 함께 관직을 삭탈 당했으나, 손자인 이충과 이명은 광해군 때에 서용되어 관직에 올랐다.
이렇듯 중종 때는 공신들의 세상이었고, 명종 때는 외척의 시대였다.
심통원(沈通源)은 세종 장인 심온의 고손자이고 연산군에게 죽은 심순문의 아들이고, 명종비 인순왕후의 종조부(형제의 손녀)이다. 형제 심연원·심달원·심봉원 등이 모두 고관이었다.
심통원이 중종 때 세자시강원필선에 있을 때 ‘바르지 못한 논리로 강론을 하고도 내용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고 사헌부가 체직을 청하여 쫓겨나기도 했다. 명종 때 왕비의 친척으로서 등용되어 예조참판·호조참판이 되었는데, 명종 8년에 사관이 사견으로 ‘심통원이 제 마음대로 권세를 탐하여 뇌물이 문간을 메운다’고 써 넣을 정도였다.
명종은 영의정 심연원(인순왕후 조부)이 있는데도 심통원을 우의정으로 승진 시켰다. 또 좌의정이 되어서는 이량을 지지하고 권력을 남용하다가 삼사로부터 탄핵 되지만, 영중추부사로 전임되고 약방 도제조를 겸한다.
명종이 위독해지자 인순왕후와 영의정 이준경은 하성군을 후사로 세우려 했다. 심통원이 다른 사람을 후사로 생각하고 있자 이준경은 명종이 임종 할 때에 심통원을 내의원 별당 다락에 가두고 하성군을 왕위에 올렸다.
선조 때 심통원은 이이와 삼사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 당했다.
윤원형은 너무 유명한 외척이라 행적은 생략하고, 윤임과의 계보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 삼한공신 윤신달의 4대손 윤관이 여진족을 몰아낸 공으로 영평백(鈴平伯)에 봉해졌는데, 영평은 파평(파주)에 있어 본관으로 삼았다.
윤관의 장남 윤언인의 11대손이 성종의 폐비 윤씨이고, 사남 윤언이의 자손 윤번이 바로 세조비 정희왕후와 윤사윤·윤사흔·윤사분의 부친이다.
윤번의 차남 윤사윤은 윤보>윤여필>윤임·장경왕후로 이어지고, 윤번의 삼남 윤사흔은 윤계겸>윤욱>윤지임>윤원형·문정왕후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