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날이 아른거린다.
언제쯤 아른거리지 않을까.
영원히 아른거리겠지
죽으면 아른거리지 않겠지
어쩌면 죽어도 아른거릴지 몰라
그는 아른거림만 남기고 갔다.
눈을 감으면 눈앞이 깜깜해서
집을 가면 돌아다니는 게 생각나서
베란다를 보면 텃밭을 가꾸는 게 보여서
곳곳에 아른거림을 잔뜩 두고 갔다.
망을 덮어 새가 따먹지 못하도록 지킨 블루베리와
안 쓸리고 때깔 좋게 잘 말린 곶감은
항상 내 차지였고
내가 집에 오는 날에는
항상 문 코 앞까지 나왔고
다른 가족들이 요리를 자주 해주고 더 잘해도
어쩌다 한번 한 내 요리가 1등이었다.
뉴스에 나온 속보들을 얘기하며
첫 번째로 전화해서 나의 안전을 걱정했고
식사가 끝나면 바로 일어나는 사람이
내가 잘 먹는지 지켜보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회가 먹고 싶다 말하면
당장 내일 포항을 갈 계획을 세웠고
아무도 보여주지 않고 몰래 쓴 일기장은
내 앞에서만 비밀스럽지 않았다.
곳곳에서 그의 공허함을 느꼈고
곳곳에서 그의 존재를 알았고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았다.
그렇게 나의 우주가 사라졌다.
그렇게 광활했던 우주가
멀리서 흐릇하게 빛나는 별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