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이의 품위를 높이려는 의도로, 긍정이나 좋은 뜻의 순우리말은 사용이 줄어들었고, 순우리말의 수는 실생활에서 점점 적어졌으며, 현대 실 생활에서 사용되는 순우리말엔 지랄과 짜증같은 나쁜 말, 속어만 남았을 수 있다는 가설.
나는 인간이 사람의 언어와 동물의 언어를 구분하여 사용한다고 얘기했었다. ‘자식-새끼, 항문-똥구멍’ 이런 사람의 용어와 동물의 용어 구분도, 나의 앞의 가설을 뒷받침한다. 조금 고상하게 느껴지는 단어는 모두 한자어이고, 욕이나 거친 말은 모두 순우리말이다.
존 롤스가 정의에 평등의 개념을 넣기 위해 했던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는 '사고 실험'처럼, 우리도 여기서 ‘무지의 장막’을 펼쳐보자. 순우리말만 쓰는 우리 민족만이 살던 시기 어느 때, 중국으로부터 한자가 전래되었을 것이다. (중국과는 지리적으로 너무 붙어있어서 사고 실험에서와 같은 이상적인 상황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수십, 수백 년 동안 서서히 간섭되었을 것이다.) 사회 지배층은 오늘날 우리들이 영어나 불어 등을 섞어 쓰는 것처럼 한자어를 실생활에 사용하면서, 하층민과 구분 짓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이런 언어를 통한 정치적 행위인 구분 짓기는 은연중에 하층민들의 모방으로 확산되면서, 점점 순우리말의 사용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층민들은 모방을 통해, 그들 주인과 같은 근사함을 가지려 했을 것이다. 사람의 용어(자식, 항문)는 도덕 필터를 장착한 동물의 용어(새끼, 똥구멍)다. 도덕의 필터를 쓴 인간 의식의 선택이 사람의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즉 지배계급은 도덕 필터로 하층 민들의 언어 사용에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방을 부추겼을 것이다. 지배계급의 구분 욕망은 사서삼경을 정치 및 교육의 장으로 편입하면서 더욱 심화되었을 것이다. 사서삼경의 도입 이후, 이제는 그 수준이 너무 높아져, 하층민들은 흉내도 내지 못하게 되고, 순우리말은 하층민들의 용어로 고정되어 버렸을지 모른다. 이것이 순우리말의 적어짐에 대한 나의 가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