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담당 Mr. 라예드와 면접을 위해 제다에서 리야드로 출장 가는 길, 탑승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로 가는 버스 안, 버스는 South Terminal 게이트를 출발하여 신공항 게이트까지 약 20분을 달린다.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왜 이렇게 멀리 가지?’라고 의문을 품으며, 간간히 지나가는 비행기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Mr. 라예드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러다 리야드까지 가겠네!”라며 혼잣말을 던졌다. 분명히 그것은 작은 혼자의 중얼거림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다. Mr. 라예드가 대화의 불똥을 만들었고, 그 불똥에 힘입어 주변의 사람들이 대화에 바람을 불어 넣고, 대화의 희열에 불을 지핀다. 순식간에 버스 안에 3-4명이 참여하는 대화의 장이 생기고 그들은 무한 주제의 대화 속으로 빠져든다. 왜 버스가 오래가는 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 리야드 공항은 어떤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신의 아이들이 어떤지…, 등등 은근히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뽐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전화번호를 따고, 관계가 더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한국사람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무거운 침묵이 흘렀을 것이고, 최근에는 모두가 손바닥 안의 핸드폰만 보고 있었을 것이고, 버스의 단조로운 엔진 소리만 났을 것이다. 아랍인들에게는 천부적인 사교의 DNA가 있다. 이게 삶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삶의 가치일까? 사실 우리네 어린 시절에 우리나라도 그랬다. 처음 보는 아줌마들도, 처음 보는 아저씨들도 대화의 희열에 쉽게 빠져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변한 것이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타인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사회가 된 것이다. 사람들 간의 사막화를 부추기는 것이 사회 발전의 방향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