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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 처음 읽기

by YT

일단 한번 읽기를 마쳤다. [도덕의 계보학]과 마찬가지로, 정리된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두 번, 세 번은 읽어야 할 것 같다. [선악의 저편]을 선택한 것은 [도덕의 계보학]의 주석에 많은 부분 언급되기 때문이다.

한 번의 정독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인상은 [선악의 저편]은 마치 오페라나, 교향곡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리가 여성이라면’으로 시작하는 서곡이 있고, 철학자와 자유정신에 대한 탐구로 시작하는 전개가 있고, 뜬금없이 잠언/간주곡 장이 나오고, 그 후에는 우리의 덕, 민족과 조국의 문제로 증폭되며, 마지막으로 ‘고귀함에 대하여’ 장에서 작곡가의 논조는 클라이맥스로 터지고, 후곡을 통해 (같은 감정의 농도를 가지지만) 다시 생략과 비약이 많은 잠언 형식으로, 조감의 느낌으로 이제까지 전개한 내용을 관조의 격정으로 마무리한다. 어쩌면 격정적인 끝맺음처럼, ‘고귀함에 대하여’에서 ‘후곡’으로 이어지며, ‘짜자자잔 ~ 짠! 끝!’하듯 갑자기 감정의 문을 닫으며 끝나 버린다.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잠언, 간주곡’ 장으로 꼭 2시간짜리 오페라의 화장실 가는 시간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앞 장들과의 연관 속에서 그 잠언들이 배치되지만, 어떤 것은 내용과는 동떨어진 그냥 잠언, 진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격언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쉬는 시간에 배경음악으로 틀어주는 간주곡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니체가 얼마나 바그너와 밀접한 관계를 만들고, 그에 취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니체에게서 철학서는 음악과 통섭하고 있다. 내용적인 측면뿐 아니라,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철학서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인 면에서 도입과 전개, 클라이맥스와 카타르시스로 이어지는 전통적 예술 표현의 프로세스를 따르고 있으며, 형식적으로도 간주곡, 후곡으로 표현함으로써, [선악의 저편]은 완전히 음악이고자 한 듯하다.

한편 내용적인 면에서 전반적인 인상은 후에 [도덕의 계보학]으로 좀 더 정제되고, 모아지는 개념들이 [선악의 저편]에서는 좀 더 풀어지고, 흩어져 있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좀 더 산만하고, 중언부언의 반복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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