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일민족으로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지만, 중동 지역에는 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투르크인과 아랍족들과 같이 어울려 사는 민족이 있다. 아마 그 대표적인 민족이 터키 인구의 약 12%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쿠르드족일 것이다. 쿠르드 족은 터키의 남동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지만, 터키 전역에 퍼져있다. 과거 이들은 PKK로 대표되는 무장활동을 주로 전개했으나, 요즘은 합법적으로 터키 의회에 진출하는 모양이다.
내가 터키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쿠르드 족 영화 상영 금지 조치로 시내 도로를 점유하고 과격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다소 저층은 쿠르드족들이 차지하고 있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도 쿠르드 족 마을이 달동네 산비탈에 위치했던 기억이 있다. 쿠르드 족은 그들이 사는 각 국가에서 하층 계급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쿠르드 족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쿠르드 족에게도 영광의 순간이 있었다. 과거 아랍 최고의 명장, 아랍의 이순신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고, 십자군을 중동에서 몰아낸 이슬람의 명장, ‘살라딘’이 사실은 쿠르드족이다. 살라딘 가문은 후에 이집트에서 야유브 왕조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쿠르드 족의 국가 설립의 꿈은 번번이 서방국가들에 의하여 사기당해왔다. 쿠르드 족 현대사는 국가 설립을 위한 노력의 역사이지만, 다른 한 편 농락과 배반의 역사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 중, 오스만 투르크 제국 해체 시기에 영국/프랑스 등 서방 국가는 쿠르드 족을 앞세워 오스만 터키에 대항하도록 부추기며, 그들에게 독립국가를 약속했지만, 배신당한 아픔이 있다. 또 가장 최근에는 시리아 내전 당시, IS에 대항하여 전쟁의 최전방에서 IS와 전투를 벌였지만, 터키 군의 적극적인 공세와 미국 등 서방의 외면으로 또 한 번 배신을 경험해야 했다.
한편, 발루치는 쿠르드 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이들 역시 중동과 인도에 걸쳐있는 소수 민족이다. 발루치는 파키스탄 서남부, 이란 남부, 아프가니스탄 등에 걸쳐있는 민족이다. 파키스탄 남쪽 지역은 발루치스탄(발루치인들의 땅)이란 정식 행정구역으로 불린다. 발루치들의 고향은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일찍부터 이 발루치인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건너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에 많이 정착하여 살았다. 내가 알기로 UAE의 경찰과 군인 인력은 주로 이 발루치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발루치는 세계사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중동에서 여전히 소수민족으로 아랍족들에게 흡수되어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