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을 여행하며 아마 가장 많이 보았던 것은 고대 로마의 유적일 것이다. 이 돌로 이루어진 로마 유적은 많이 부서지고 황폐하지만 그 웅장함과 스케일에서 여전히 관광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로마 문명이 오래도록 관광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제국의 광범위함과 지배력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로마 문명이 "돌 문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로마의 건축물들이 나무나 흙으로 되어 있었다면 오늘날 이토록 광범위한 지역에 그 엄청난 스케일의 유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로마 문명은 그 후반의 절반부터 기독교와 결합하면서 전 세계에 지배적인 기독교 문명을 낳게 되는 모태가 된다. 현재 아랍 지역은 기독교의 발원지이고, 이슬람 이전에는 대부분 기독교 문명이 번성했던 곳이다. 이슬람을 알고 싶고, 아랍을 보고 싶어서 이 지역을 여행하지만, 정작 아랍/이슬람보다 기독교적인 것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사실 아랍 유적은 로마나 기독교 유적보다 소박하고, 검소하기 때문에 관광상품으로써의 매력은 덜하다. 모스크를 제외하면 기껏해야 자그마한 성 정도가 전부이며 그조차 대부분은 기독교가 지배적이던 시절, 혹은 십자군에 의하여 최초로 지어졌던 것을 아랍 시대에 아랍 적인 것으로 변형하여 사용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적에는 로마와 기독교 – 아랍과 이슬람이 공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터키의 ‘아야 소피아’는 동로마 제국의 ‘성 소피아 성당’으로 이슬람 이전, 동방정교회의 성당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스만 제국은 이스탄불 점령 이후, 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기독교적인 장식들에 회 칠을 하여 무슬림을 위한 모스크로 사용하였다. 현재 많은 이슬람 지역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성지 순례를 하는 곳이다. 이 지역 곳곳에 기독교인들의 성지가 있으며, 실제로 상당 수의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다. 시리아 현지 여행사 '시리아나' 사장님은 1년에 수 차례씩 한국인 성지 순례객을 맞이한다고 한다. 그들의 프로그램은 대부분 기독교의 성지들로 채워진다.
레바논의 하리사, 시리아의 세이드나야, 마눌라, 아니니의 집, 요르단의 느보산, 터키의 지하도시, 카파도키아, 초기 7대 교회, 사도바울의 탄생지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관광지가 기독교 전설을 간직한 기독교의 성지이며 기독교 교회가 있다. 실제 아랍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기독교적인 신비를 간직한 샘물과 교회, 아랍의 탄압을 피해 세워진 땅굴 교회 등 수많은 기독교 유적을 만날 수 있으며, 아니 만나야만 하며 또 그곳에서 붉은 눈시울을 닦으며 나오는 수많은 성지 순례객들을 보고, 한 곳에 모여 간단하게 예배를 보는 일단의 기독교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현재 아랍 이슬람 국가의 관광 수입의 상당한 액수가 기독교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이슬람의 포용력과 유연성, 실용성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