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권에도 술은 있다. 종교와 도덕의 갖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술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디오니소스 이래 술은 사람 사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종교의 권위를 농락하고, 어쩌면 의식주 조차 찜 쪄먹을 수 있는 인간의 피 같은 것은 아닐까? 대부분 이슬람 권 국가에서도 맥주 정도는 가볍게(?) 유통된다. 내가 아는 한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은 자체 브랜드 맥주를 직접 생산한다. 맛도 매우 훌륭하다. 터키의 EFES는 전 세계에 수출되는 인터내셔널 브랜드가 된 지 오래다.
또, 와인이 있다. 요르단은 자체 와인 브랜드를 가지고 있고, 터키는 고대부터 포도를 재배하였기 때문에 시중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만날 수 있다. 터키에는 ‘보아즈케레’와 ‘오쿠즈교즈’라는 터키 고유 포도 품종도 보유하고 있다. 이 두 품종은 전설에 의하면 노아의 방주가 마침내 멈추어 섰다고 하는 터키 동부 아라랏 산의 방주 터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두 품종으로 만든 터키의 와인 브랜드로는 ‘돌루자’와 ‘사라핀’이 고급 브랜드에 속한다. 터키에 가면 터키 고유 품종의 포도로 만든 와인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와인의 발생이 어디든, 와인과 맥주는 서양의 술이다. 그럼 우리나라의 막걸리처럼 중동지역을 대표하는 술은 없을까? 있다! – 아랍어로는 ‘아락’, 터키어로는 ‘라크’가 아마도 중동지방, 이슬람 권역의 대표 술이라고 할만하다. 라크는 와인과 코냑처럼 포도를 Base로 한다. 포도를 증류하여 나온 알코올에 몇 가지 향신료를 추가하여 만들어지는데, 한국인들에게 보통 거부감이 있는 향신료 아니스를 첨가하기 때문에 독특한 향이 나는 술이 라크다. 라크는 원액의 도수가 높아 물을 타서 희석하여 먹는데 물을 부으면 마치 우리네 밀키스처럼 뿌옇게 색이 변한다. 이런 색의 변화 때문에 라크는 ‘사자의 젖’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터키에서 라크의 고향은 이스탄불에서 유럽 쪽으로 차로 약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트라키아 지방의 ‘테키리다으’라는 곳이다. 터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라크를 볼 수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예니라크’라는 브랜드이다. 터키에는 유명한 라크 애호가 한 분이 있다. 터키의 국부인 아타투르크 케말 파샤. 가끔 현 대통령 에르도안(이슬람 중심주의)은 아타투르크를 Drunken Ataturk라고 정치적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거의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아타투르크를 보듬어 주었던 술이 이 라크다. 자료화면에도 아타투르크의 취한 모습이 과거 흑백 필름으로 남아있다.
라크는 그리스의 ‘우조’와 똑같고, 피카소 시대 유럽의 ‘압생트’와도 비슷하다. (압생트는 원액이 기본적으로 초록색이다) 그래서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는 술 원조 분쟁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우조가 원조라고 하고, 터키에서는 라크가 원조라고 한다. 하지만 터키에 다소 편향된 나로서는, 그리고 역사적으로 볼 때 현재 그리스 발칸반도를 500년간 지배했던 오스만 터키로 볼 때, 라크가 원조가 아닐까?
하지만, 라크는 그리 좋은 술은 아니다. 이것을 원샷(터키에서는 원샷을 ‘폰딥’이라고 한다)으로 먹었다가는 그다음 날 머리 깨짐을 각오해야 한다. 특히 아니스 향도 소화하기 어려운데 이 독한 술을 여러 잔 먹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