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왕조의 단절

by YT

터키가 공화국이 되기 전까지 오스만 터키는 500년간 아나톨리아 반도(소아시아)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또 오스만 터키의 위대한 술탄, Fatih Mehmet 2세에 의하여 최종 정복되기 전까지, 비잔틴 제국 역시, 약 800년간 그 명맥이 이어졌다. 이렇게 한 왕조가 오래도록 유지된 것은 유럽지역에서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비교적 오랜 기간 지속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역사는 약 300년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터키는 잠시 동안 왕조의 맥이 끊어졌던 슬픈 공통점이 있다.

먼저 비잔틴 제국, 베네치아의 원수인 ‘엔리코 단돌로’의 주도로 조직되었던 4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지 않고, 같은 기독교도 국가인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리고, 그곳에 라틴제국을 세운다. 라틴제국은 이스탄불을 수도로 약 60년간 지속되었다. 후에 다시 비잔틴 제국은 회복되었지만, 공식적으로 60년간 비잔틴 제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아야 소피아(성 소피아 성당) 2층에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돌다 보면 바닥에 희미하게 엔리코 단돌로의 묘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야 소피아를 관광하다 보면 아름답고, 황홀하게 복원된 기독교 모자이크 성화에 매료되어 엔리코 단돌로의 묘를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터키에서 성 소피아 성당을 방문한다면 죽어서 자신이 빼앗은 성 소피아 성당에 묻히고 싶었던 엔리코 단돌로의 욕망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꼭 가지기 바란다. 전설에 의하면, 비잔틴 제국이 다시 들어서고, 단돌로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과 뼈를 길거리에 던졌는데, 개들도 물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오랫동안 중세 유럽의 동쪽 높은 벽 같은 존재였고, 이들 때문에 유럽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가는 신 항로를 개척할 수밖에 없었고, 또 대항해 시대를 열어 신대륙 발견이라는 행운을 주었던 오스만 터키는 언제 왕조의 단절이 있었을까? 오스만 터키의 4대 술탄 베야지드 1세 이후 약 10년 동안 공백이 발생한다. 오스만 터키가 새롭게 부흥하여, 한참 번창하고, 영토확장을 꿰하며 연전연승을 하고 있을 때, 베야지드 1세는 불행하게도, ‘불패의 사나이’ 아미르 티무르를 만난다. 베야지드 1세는 전쟁에서 패하고 티무르의 포로가 되어 쓸쓸히 타국에서 죽었다. 오스만 터키 초창기에 술탄이 포로로 잡혔으니, 오스만 제국은 완전히 와해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나, 그의 아들들에 의하여 오스만 제국은 다시 부활한다. 그리고 마침내, 베아지트 1세의 증손자인 정복자 Fathi 메흐멧 2세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게 된다.

두 제국은 왕조의 단절이라는 공통점은 있으나, 단절 이후의 양상은 완전히 달랐다. 비잔틴 제국은 회복 이후, 점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오스만 터키는 제국 초기의 큰 시련에도 불구하고, 단절 이후, 보다 탄탄한 발전의 길을 간다. 그 후 술탄 Fathi, 카누니(입법자) 슐레이만 대제 시기에 최고의 번영을 누리며, 오랫동안 유럽 전역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keyword
이전 08화아랍과 터키의 술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