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1906년 오스만 제국 말기, 서양화가 ‘오스만 함디 베이’의 [거북이 조련사]라는 그림으로 이스탄불 페라 박물관의 대표 전시 품목 중 하나다. 이슬람 스타일의 추상적인 패턴이 주류를 이루는 터키에서 구체적인 사람과 동물이 등장하는 회화 작품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2004년 경매에 나왔을 때, 350만 달러에 페라 박물관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터키를 여행하다 보면 카펫과 킬림 디자인에서, 터키 도자기의 그림으로, 기념품 가게의 후줄근한 타월에서, 심지어 기념품 직소퍼즐에서도 이 그림을 만날 수 있다. [거북이 조련사]는 터키 내에서 굉장히 유명한 그림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거북이 조련사라니? 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그리고 거북이를 길들인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 매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 그림에 나오는 거북이 조련사는 아름다운 튤립과 관련있다.
우리는 튤립이 거대한 풍차를 배경으로 형형색색 피어있는 홀란드의 꽃으로 알고 있지만, 원래 야생 튤립은 중앙 아시아가 원산지로 터키 민족의 이동 경로를 따라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터키 민족은 중앙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그들의 집 주변에 야생 튤립 구근을 심어왔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온 터키인들이 고향의 벌판이 그리워 집 마당에 조금씩 심었던 꽃, 그래서 터키의 國花는 터키어로 ‘랄레’라고 하는 튤립이다. 매년 4월이면 이스탄불 전역은 튤립으로 장식된다. 4월 ‘랄레 페스티벌’은 이스탄불의 가장 큰 축제다. 모든 중요한 도로 주변과 공원 곳곳에는 형형색색 튤립이 심어지는데, 특히 싸리에르의 에미르간 공원에는 산비탈 하나가 완전히 아름다운 튤립으로 덮인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거북이 조련사와 튤립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오스만 제국 시대 궁궐에서도 튤립을 많이 심었는데, 튤립을 멋지게 조림하고, 군데군데 초를 밝혀서 아름다운 튤립을 밤에도 감상했다고 한다. 이때 거북이의 등에 초를 붙여서 거북이가 튤립 사이를 이동하며 더욱 환상적인 꽃구경을 만드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튤립의 감상을 위해 거북이 조련사의 연출과 솜씨가 필요했던 것이다. 튤립을 심은 정원의 한쪽 면에는 거울이 설치되어 정원이 두배로 커 보이고, 군대 군데 설치된 촛불이 밤의 튤립을 더 은은하게 만들어주며, 그 사이를 누비는 거북이 촛불은 튤립의 감상을 매우 환상적인 것으로, 사치스러운 것으로 바꿔준다.
이런 튤립의 감상은 술탄 아흐메드 3세 시절에 극에 달하는데, 이 시기를 터키 역사에서도 공식적으로 튤립 시대(1718년-1730년)라고 한다. 이 시기 유럽지역과 가깝게 교류하면서 서구 문화가 지배층의 취미로 들어오게 되고, 다양하고 계량된 비싼 서양의 튤립들이 술탄의 궁에, 귀족들의 집에, 부자들의 집에 또 뽐내고 싶은 서민들의 집에도 폭넓게 심어졌다. 1600년대 초 중반 홀란드의 튤립 파동 이후 잠잠했던 튤립에 대한 수요가 오스만 제국에서 일어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사치 풍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결국 튤립 시대의 화려함은 사치가 되었고, 사치풍조가 조장되면서 술탄 아흐메드 3세는 반란에 의하여 죽게 되고, 어쩌면 최초의 터키 근대화의 시도라고도 평가받는, 튤립 시대도 막을 내린다.
‘랄레’는 터키를 대표하는 이미지이다. 터키에서 유명한 유리와 도자기 브랜드인 ‘파샤바흐체’의 많은 제품 디자인이 이 랄레를 모티브로하고 있다. 그리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품목에도 이 튤립 디자인이 있다. 나 역시 이즈닉에서 터키의 푸른색 도자기를 구입할 때 이 튤립 문양을 구입했다. 특히 터키에서 유명한 튤립은 꽃잎의 끝이 뾰족한 것으로 이것은 튤립 중에서도 ‘이스탄불종’이라고 한다. 터키의 대부분 튤립 이미지는 이 이스탄불 종을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