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잘했다고 선생님이 안아 주셨어요”, “졸업이라고 애들을 다 안아 주셨어요” –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아이들은 ‘안아주었다’는 말을 마치 상을 받은 것처럼 자랑하곤 했다. ‘안아주기’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고, 특히 무뚝뚝한 내겐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감정 표현의 절제를 미덕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츤데레’라는 용어도 감정 표현의 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에만 있는 말일지 모른다.
안아 주기는 상대방의 체온을 느끼는 것이고, 그의 향기를 느끼고, 그에게 나를 던지는 것이다. 정말 순간적으로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안아 주기에는 힘이 있다. 모든 날카로운 모서리를 뭉개버리는 힘이 있고, 모든 오해를 녹이는 열(熱)이 있고, 어떤 이해관계와 떠오르는 고민을 덮어주는 따뜻함이 있다. 안아 주기는 두 사람의 감정을 더욱 달콤하게 만든다. 안아 주기의 여운과 기억은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그 사람에게 충전되고, 이후의 삶을 사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안아주기’가 가장 안 되는 사람들이 아마도 중년의 한국 남자들일 것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애들이 한국에 왔을 때, 마음 같아선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괜한 복장 트집만 잡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안아 주기’를 실천하지 못한 체, 분석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