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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원색은 없다

호미바바의 혼종성의 예

by YT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문화의 고유함, 독창성, 창의성이라는 말들이 얼마나 신빙성이 떨어지는 말인가 느낄 수 있다. 특히 큰 스케일에서 얘기되는 문화의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 그들만의 정체성 혹은, 순수한 문화라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이성의 작용에 의한 일반화의 결과로 또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하여 굳이 위험한 ‘독창성’ 개념을 상정하는 듯 보인다.

막연히 케냐라면 모든 것이 온전한 아프리카적인 것이라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케냐의 지배적인 언어인 스와일리어는 아랍어와 많은 부분 섞여있고, 케냐의 동부 뭄바사 올드 타운은 마치 시리아의 알레포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유사한 주택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올드 타운에서는 검은 ‘부이부이’(아랍의 아바야)를 입은 흑인 여인과 ‘칸주’(아랍의 토브나 깐두라)를 입은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며, 무슬림의 인사인 ‘앗살람 알레이쿰’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들의 인사 법 중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살람’이라고 인사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란의 인사 법과 완전히 같다. 또 어떤 지역은 인도 풍으로 보이기도 한다. 케냐는 온통 검은색으로 채색된 아프리카가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색깔이 버무려진 혼재된 색깔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예는 남아공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남아공의 문화는 흑인과 백인, 아프리카와 유럽의 복합 문화이고, 백인 문화 역시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문화가 복합되어 혼재한다. 특히 남아공 사람들의 피부색을 보면 문화 복합화 현상의 전형적인 단면을 볼 수 있다. 남아공에는 아주 다양한 인종의 조합이 가능하다. 실제 남아공을 여행하다 보면 흑인 같은 백인, 백인 같은 인도인, 중국인 같은 흑인 등 모든 유형의 혼종성을 경험할 수 있다. 또 파키스탄의 경우 이슬람 국가이므로 아랍과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인도와 많이 닮았고, 이들의 언어 우루두는 이란의 파르시를 차용하여 표기하지만 발음 자체는 인도의 힌디와 같다. 파키스탄 사람은 인도 사람들과 말로써 대화가 가능하지만 글로써는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또 파키스탄의 칼라풀한 원색의 버스는 동남아의 그것과 닮아있다. 이란 역시 자신만의 페르시아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자랑하지만 이란의 북부는 터키어를 쓰고, 유적 역시 터키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란의 남부는 두바이와 비슷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또 모로코는 아랍적인 것과 아프리카적인 것, 프랑스적인 것들이 모두 공존하는 도무지 복합 정체성으로 밖에는 얘기할 수 없는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런 문화의 혼종성과 복합성은 큰 나라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런 복합화의 원인은 세계사적으로 정복과 교류의 역사, 식민과 침투의 역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알렉산더의 정복이 그리스적인 물을 들여 간다라를 낳고, 칭기즈칸의 정복이 몽고적인 색으로 그 주변을 한번 물들이고, 아랍의 정복이 그 위에 또 아랍 빛깔을 추가하고, 영국의 침략과 식민지배가 영국적인 색깔을 또 덮어 씌우고...., 세상에 순수한 원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엔 굳이 이런 물리적인 정복의 역사가 아니더라도 교통과 통신, 전파의 영향으로 세계는 급속하게 동질화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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