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렇게 느낀다. 하지만 실제 중동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중동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를 걱정한다. 북한이 미사일 쐈다던데 괜찮은가? – 현재 전쟁이 한창인 곳을 제외한다면 실제 생활에서 위험하다고 느끼긴 힘들다. 하지만, 중동이 위험하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작은 덩치 이스라엘의 폭력은 몇십 년째 진행 중이고, 아프간에서는 다시 돌아온 탈레반의 기세가 등등하고, 사우디는 몇 년째 예멘과 미사일을 선물처럼 주고받고, IS와 시리아 정부군은 여전히 국지전 상태에 있고, 더 파괴될 것이 남아 있을까 싶은 이라크에서도 가끔 폭탄 테러의 소식이 들리고…, 정말 세계의 화약고라는 말이 실감 나는 곳이 중동이다.
하지만, 중동이 위험하다고 ‘저들은 왜 맨날 싸움을 할까’, ‘이슬람은 무서워!’라고 중동 사람들과 그들의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내가 같이 일했고, 여행하며 만났던 사람들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순박하고, 착하고, 이웃을 염려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과거 시리아를 여행하며, 버스에서 내려 목적지를 찾아가는 어리바리한 나를 따라와 주고 걱정해 주던 같은 버스에 탔던 오지랖 넓은 승객들의 시선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정이 많은 사람들이고, 자신의 가족과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중동의 역사를 살필 필요가 있다. 현대 중동의 역사는 과거 500년 동안 이어졌던 오스만 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정립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현대 중동 지역을 느슨하게 장악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 세력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와 그들 세력과 결탁한 토착 정치세력의 기획과 결탁으로 현대의 중동은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2차 세계대전으로 부상한 미소 냉전시대의 이해관계가 그 위에 덧칠되고, 석유와 가스의 발견과 그것과 연계된 유통의 문제는 지금도 이 지역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이란에서 이맘 호메이니에 의해 미국이 후원하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면서,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후원했고, 이것은 이라크-이란 전쟁으로 길게 이어지고, 전쟁이 그친 후 미국의 이해관계는 사담 후세인의 독자 노선(쿠웨이트 침공)과 상충하는 결과를 만들었고, 그것은 결국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사담 후세인은 결국 축출되었고, 미국이 후원하는 또 다른 정치 세력이 이라크에 세워지지만, 자생적으로 생겨난 정치조직인 IS에 의하여 이라크는 다시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의 아프가니스탄도 이와 매우 비슷한데, 과거 냉전시대 소련에 의하여 점령된 아프가니스탄에 자생적으로 탄생한 조직이 탈레반이었다. 당시 탈레반은 어느 정도 미국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소련이 철수하면서 탈레반은 정치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였고, 미국도 이 부분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다. 그러다 911 테러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로 아프가니스탄이 지목되었고, 또다시 아프가니스탄은 큰 덩치 미국의 펀치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또 이스라엘 역시, 과거의 거주지 영역 제한 합의를 미국을 등에 업고, 계속 번복, 확대하면서 자신들의 시온을 계속 넓혀가는 과정에서 계속적인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한번 꼬인 (역사) 행위의 스텝은 풀릴 줄 모르고, 계속해서 진흙탕을 구르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 1차적인 책임은 제국주의와 강대국에 있고, 그들과 결합한 토착 정치세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현재의 중동문제가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문제일까? 그 영향력이 현재에는 다소 약하긴 하지만, 과거 오스만 제국의 침입 역시 이 지역의 역사를 비튼 사건이었을 것이고, 더 오래는 십자군 원정으로까지 역사의 혐의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중동문제는 꼬일 대로 꼬여버린 매듭과 같다. 이것을 푸는 것은 불가능한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