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니체의 생각에 대하여

by YT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부 읽기를 마쳐가는 지금, 니체의 생각의 구조가 잡히는 듯하여 이쯤에서 니체 철학을 어느 정도 요점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 읽고, 더 생각을 하게 되면, 분명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더 많이 알수록, 더 이해하고, 이해하게 되면 더 이상 그에 대한 비판의 문구조차 떠올릴 수 없다. 그에 대한 비판은 항상 그에 대한 변론과 동시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니체의 국가론은 다소 빈약하다. 국가의 형태와 그것이 세워진 벽돌 하나하나를 개인 심리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국가의 구체적인 형태의 파괴 가능성을 주로 이야기할 뿐, 국가의 형성 자체에 대한 그 다운 접근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이렇게 국가론처럼 니체는 역사를 통해 흘러온 대상(제도, 체계)의 구조에 대한 분석을 할 뿐, 그것들의 형성과 관련한 통찰을 주지는 않는다. 나로서는 이 부분이 의아한 데, 지금까지 이해한 니체라면 국가 자체를 부정할만한데, 그는 하나의 억압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국가를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인다. 이것은 국가가 인간의 필연적인 공동체라는 일반적 믿음을 그 역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니체의 주요 관심은 종교와 도덕을 포함하는 형이상학에 있다. 물론 형이상학에 접근하는 그의 분석 방식을 똑같이 국가, 민족, 문화, 여성 등으로 확장하지만 다소 단편적이다. 형이상학을 제외한 다른 부분의 인식(분석)은 그의 시대적 제약을 다소 벋어 나지 못하는 느낌을 주고, 시간 탓인지, 아니면 그의 열정과 포화가 형이상학에 집중되어 있어서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리 깊은 통찰이나 더 많은 생각을 주고 있지는 못한 인상이다. 국가, 민족, 문화에 대한 부분은 니체의 사후에 나타난 그의 계승자(구조주의자, 해체주의자 등)들이 더욱 엄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후계자로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법과 형벌 제도의 형성과 발전, 그 속에 내재하는 억압을 니체의 망치를 동원하여 철저하게 파괴한다. 이것을 니체와 그의 후계자들의 분업 정도로 받아 들 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니체는 기존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심리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여 확장한다. 그래서 니체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심리학과 형성의 계보를 밝히는 역사학이다. 심리/역사학은 니체가 기존 형이상학을 부수는 망치다. 어쩌면 여기에서 니체에 대한 일반적 오해가 발생한다. ‘무심한 자’, ‘대충 아는 자’는 니체의 철학이 이성보다는 감성을 더 우위에 둔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니체를 정말 대충 아는 것이다. 니체의 형이상학 비판의 기저에는 치열한 지성이 있다. 이 지성은 집요한 이성의 힘이다. 그의 지성에 대한 강조는 서양철학의 본류인 ‘자유정신’과 관계한다. 자유정신의 명확함이나 오류와는 별도로 개인과 집단의 자유정신은 지성을 통해 현상과 사물에 대한 집요한 천착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니체 철학이 反이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니체는 이성의 힘을 긍정하고, 그것을 심리/역사적 관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에게 자유정신은 힘을 가지는 의지와 같은 것이다. 사실 자유정신이 아니더라도, 그 반대의 것이라도 방향성이 문제 될 뿐 모든 의지는 힘을 가진다. 그에게 있어 자유정신은 긍정의 의지를 의미한다. 여기서 니체 철학의 지성과 의지 간 비중이 나온다. 분석과 이해의 힘으로써 이성에 의한 지성을 긍정하지만, 이 지성은 의지가 될 때 비로소 방향성과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 철학에서 의지는 지성, 이성보다 의지가 강조되는 것이다. 이 의지의 힘은 에너지를 의미하고, 에너지는 생산되고, 축적되고, 폭발하는 것이다. 이 힘에의 의지를 통해 인간 세상이 굴러가고,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힘에의 의지는 매우 중립적인 에너지로 그 방향성을 자신에게 돌리느냐, 아니면 밖으로 돌리는가에 따라 억압이냐 해방이냐로 나타나게 된다. 그 힘이 긍정적인 방향에서 극도로 발휘되어 한 인간에게 체화되었을 때 위버멘쉬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니체 철학의 흐름과 구조를 요약한 것이다. 그의 철학은 꿈틀거리는 의지 에너지의 느낌이며, 그것의 삭힘은 굴복이 되는 것이고, 그것의 폭발은 승리가 되는 것이다.

사실 ‘위버멘쉬’로 대표되는 니체의 대안에 대한 가치보다, 그를 오늘날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은 서양의 전통에서 철옹성과 같은 기독교와 도덕, 즉 형이상학의 금기를 그가 건드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시원하거나 처참할 정도로. 그의 망치는 현대로 넘어오면서, 그의 후계자들에게 분신술로 커다란 해머가 되었다. 바로 이런 역사적인 영향에 니체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미지 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