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는 보르헤스가 이 단편을 쓴 의도를 생각했다. 거장의 가벼운 장난기의 발현일까? 소설의 소재 고갈에 대한 대안이라는 작가로서의 사명일까? 아니면 하나의 소설이 받을 수 있는 영향관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보르헤스는 허구의 작가가 쓴 신비주의와 탐정소설이 버무려진 허구의 소설을 요약한다. (물론 이 소설은 보르헤스 자신이 쓴 것이다) 더욱이 1932년 판과 1934년 판을 비교하면서 1932년 판이 보다 비평적인 관점에서 더 잘 쓰인 소설임을 밝히고 있고, 그것은 허구의 작가(미르 바하두르 알리)가 천재이고 픈 천박한 유혹에 이끌렸기 때문에 1934년에 다시 수정되었다고 비판한다. 보르헤스는 [알모타심으로의 접근]을 신비주의 탐정소설이라기보다는 求道소설로 규정하고, 다른 소설(새들의 회의)과의 영향관계 속에서, 마땅히 求道者와 道는 같은 것일 때 바람직하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구도소설이 더 나은 것이 되려면, 두 가지 요건이 있다. 첫 번째는 구도의 과정에 포함되는 알레고리이고, 두 번째는 최종 목적인 道(알모타심)가 뻔한 관례적인 것이 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바하두르의 1934판이 실패했다고 비판하며, 구도자와 도가 일치하는 동일성의 원리를 구도 소설의 매우 중요한 스토리 구조로 추천한다. 그는 이러한 서사가 ‘관대한’ 거장에 맞지 않는 꼰대 짓이고, ‘소설 창작반’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폭력 같은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만약 이것이 보르헤스의 의도라면, (그리고 스스로 보르헤스를 변명해 본다면,) 지금이야 이런 동일성의 원리가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보편적인 기교가 되었지만(제5원소에서 밀라 요요비치와 부르스 윌리스는 비밀을 찾아가지만 그녀 자체가 비밀을 푸는 열쇠임을 마지막에 알아차린다), 아마도 1940년대에서는 매우 창의적인 기법으로 보일 수 있겠다고 변호해본다.
이 단편에서 보르헤스는 가상의 작가가 쓴 가상의 소설에 대한 비판, 심지어 가상의 판본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비평은 실제 인물을 인용하여 좀 더 사실감을 준다. 가상은 현실에 그 촉수를 꽂고 있을 때, 좀 더 환상적으로 변해갈 수 있다. 나보코프 정도는 아니지만, 소설의 소재가 고갈된 시대에 비평도 허구의 서사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왕복하는 그의 스타일은 메마른 소설 장르에 보다 풍부한 습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한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보르헤스가 이 단편을 쓴 두 번째 이유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보르헤스는 이 단편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등장시키며 이 단편의 영향관계를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신비주의와 탐정소설의 융합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리고 자체의 두 판본을 서로 비교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새들의 회의’를 끌어들이며 바람직한 구도 목표의 설정 기교를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대적인 것보다는 과거의 권위 있는 소설(율리시즈와 오디세이아) 간의 비교가 주는 하찮은 비평의 방식을 비판하기도 한다. 아마 여기서 인용하는 비교되는 모든 작가의 생각과 소설은 보르헤스가 파악하거나 읽은 소설일 것이다. 즉, 보르헤스는 [알모타심으로의 접근]의 소설적 권위를 더하기 위하여 무수히 많은 그가 읽었던 것들과의 차이점과 유사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어쩌면 일반적으로 논문 뒷부분에 길게 실리는 ‘참고자료’ 목록을 이용하여 소설을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즉, 다양한 참고자료 목록이 책의 뒷부분에 의미 없이 실리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내용과 본문을 구성하는 요소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 진정한 보르헤스의 의도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