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각론-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by YT

마르셀 뒤샹은 1917년, 구입한 소변기에 ‘R. Mutt 1917’이라고 써서 독립 미술가 협회에 출품한다. 하지만 ‘샘’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외면당했고 전시 작품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뒤샹은 독립 미술가 협회에 항의 서한을 보낸다.

보르헤스의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는 1917년 당시 마르셀 뒤샹의 반박문과 흡사하다. 그 후 뒤샹의 소변기 [샘]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 대한 고민을 낳았고, 어떤 개념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개념미술의 사조를 만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는 ‘개념 소설’이라 할만하다. 정확히는 가상 인물인 피에르 메나르가 개념 소설 작가이고, 그것을 비평 형식의 소설로 다시 구성한 보르헤스는 ‘메타 개념 소설가’가 아닐까? 이 단편은 이렇게 피에르 메나르와 보르헤스라는 두 개의 층을 가진다.

스페인어 문화권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최고의 문학으로 평가받는다. 피에르 메나르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우연의 산물로 타성적인 언어와 상상으로 마구잡이로 써간 소설’로 평가하고 그것의 재현을 자신의 의무로 생각한다. 그것은 생각과 쓰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시간과 작가 자신-주체-에서 기인한 형식적, 심리적 변수와 그것의 선정과 희생, 그리고 미리 알고 있는 [돈키호테]라는 세르반테스의 소설)들에 대한 통제 실험으로, 피에르 메나르가 [돈키호테]를 쓰는 과정은 마치 구도자가 도를 닦는 수련처럼 보인다. 차라리 당시의 세르반테스로 빙의하여 소설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피에르 메나르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똑같이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몇 개의 장에서 그 작업을 해낸다. 가상의 인물 피에르 메나르는 문학이라는 종교에서 수도승 같은 삶을 산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 단편의 안쪽에 있는 내층이다. 하지만 그는 내층을 감싸고 있는 화자인 친구(보르헤스로 추정)의 비평적 관점에 주목할 필요를 느낀다. 화자는 전반부에서 피에르 메나르가 발행한 글의 리스트를 보여줌으로써,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손쉽게 그가 어떤 사상적 경향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낸다. 그리고 그 리스트는 자연스럽게 피에르 메나르가 [돈키호테]의 재현을 결심한 이유, 심지어 작업의 과정까지도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화자는 철저한 독자가 되어, 완전히 같은 문장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1부 9장과 피에르 메나르가 쓴 문장을 비교하면서 피에르 메나르 문장의 철학적 깊이와 의미의 풍부함을 찬양하고, 세르반테스의 문장은 단순한 수사학적 묘사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메나르의 새로운 기법 – 계획적인 시대착오와 잘못된 원저자 설정 – 이 독자들의 독서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여기서 저작권과 표절의 문제로 발진한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에서 모작과 원작의 경계는 없어진다. 그동안 자본주의가 받쳐오던 인간이 세운 예술과 문화를 위한 경제 시스템은 여기서 무너지는 것이다. 피에르 메나르는 아마도 ‘틀뢴’ 행성 사람인지 모른다. 작가의 손을 떠난 TEXT의 자유를 인정하는 요즘, 각각의 예술이 각각의 감상자에 의하여 수많은 다른 원본으로 분화되는 지금, 저작권을 이용한 표절의 단죄는 ‘독서 행위에서 부수적으로 나오는 다양한 해석’을 단죄하는 것과 같다고 그는 느낀다. 아! 어쩌면 책값은 책 자체의 가격이 아니라 ‘책을 읽고 해석하는 것’에 대한 가격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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