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단편을 읽은 후 그는 독후감을 위한 몇 개의 주제를 떠올렸다. 첫째는 소설 전체를 이끄는 서사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반대 개념(배신자와 영웅)의 일치’ 같은 기교적인 것에 대한 것이다. 짜여진 각본을 넘어 열심히 영웅을 연기하는 배신자에게서 느껴지는 야릇할 수 있는 욕망과 반대 개념의 동시성에 관한 것으로, 우연이 필연일 수 있는 [바빌로니아의 복권] 속 세상이다. 이런 생각은 소설의 중심 서사를 따라가는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마지막 문단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킬 패트릭(영웅이면서, 배신자인) 죽음의 배후를 조사하 던, 그의 증손자인 라이언마저도 거대한 연극의 일부분이 되고, 결국 자신이 파악한 진실에 침묵하고 킬 패트릭의 영웅적인 영광을 책으로 쓸 결심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전략의 이불에 덮인 계획에 대한 것이고, 그 속에서 구성원은 꼼짝할 수 없는 함정에 빠져있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이런 음모론의 체계를 독후감의 중심에 둔다면, ‘모든 것이 이미 쓰여진’ 세상이라는 의미에서 [바벨의 도서관]과 비슷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 번째는 역사와 문학의 연관성을 주제로 삼는 것이다. 자신들의 혁명을 촉발하기 위하여 배신자를 영웅으로 만드는 계획에 관한 것으로, 이 과정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몇몇 복선과 상징이 동원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문학이 실제 역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것으로, 거대 체계인 역사의 조작 가능성의 문제로 발진하여 그 체계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의지를 느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방향은 그가 아주 잘해 낼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첫 문단에서 보이는 보르헤스의 자유롭고 편안한, 그래서 너무나 쉽게 느껴지는 ‘소설 구상’에 관한 것으로 그 자신의 괴로운 쓰기 작업과 대비하여 부러움과 같은 것으로 풀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마지막 주체는 조금 작아 보이고, 단편과의 연관성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 이 주제는 그의 독후감에서 간단히 언급할 수 있는 SUB가 될 수는 있을 듯하다.
이제 그의 머리에서 세 개의 방향은 서로 충돌한다. 세 개의 관점을 나란히 병치할 수 있지만, 뾰족하지 못하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나 자신의 중심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배웠다. 이것이 그가 교육받은 미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를 선정해야 했다. 하지만 하나의 채택은 두 개의 누락을 의미한다. 무엇에 대해 쓴다는 것은, 덧붙이는 과정이 아니라 다른 것을 탈락시키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컴퓨터를 끄고, 책을 내려놓고, 게으름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