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각론- [죽음과 나침반]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죽음과 나침반]은 셜록 홈즈(뢴로트)와 괴도 루팡(샤를라흐)의 대결이고, 괴도 루팡은 셜록 홈즈를 유인해 살해함으로써 마침내 승리한다. 또 이 단편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 앞서 종교와 결합한 탐정소설의 전형을 보여준 단편이다. 탐정소설이 갖는 대중성에 어느 정도의 지적 양념을 곁들이는 모습에서 그는 단편의 저변에 흐르는 보르헤스의 장난 섞인 허세를 느낀다.
하지만 그는 이 소설에서 대칭과 반복, 순환과 주기적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이 개념들은 [픽션들]의 다른 단편들에서도 다루어지는 보르헤스의 중심 개념이기 때문이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는 ([천 하루 밤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시간의 순환을 이야기하고, [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에서는 대칭과 기하학적 구조를 중심개념으로 소설 비평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바벨의 도서관]에서도 혼란의 반복도 주기적인 규칙을 만들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과 나침반]에서는 살인사건의 장소와 시간이 마름모꼴의 대칭을 이루고, 대칭은 반복을 통해 강박으로 드러난다. 그 외에도 이 작품은 삼각형, 직선, 비례와 같은 기하학적인 개념들을 계속 반복하여 동원한다. 심지어 뢴로트는 자신의 죽음에 직면하여 대칭적이며 주기적인 죽음의 문제를 직선의 미로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보르헤스의 미학에는 어떤 기하학적인 이미지들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보르헤스가 계속 이야기하는 인간이 만든 ‘미로’는 기하학적인 모습을 그 특징으로 가지고 있는 듯하다. 즉, 보르헤스가 꿈꾸는 세상은 겉으로는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기하학적인 미적 바탕 위에 세워진 매우 풍요롭고 체계적인 세상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