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각론 - [비밀의 기적]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by YT

미로 - 보르헤스에게 세상은 ‘미로’다. [픽션들]의 많은 단편에서 미로는 핵심적인 개념으로 주제 의식과 관계한다. ‘미로 같은 세상’은 매우 혼란스러운 세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질서를 보려 하고, 그 미로를 풀고 중심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갈망한다. 보르헤스는 논리적인 알맹이를 찾아가는 모더니스트다. 다만 그가 미로 건설의 주체를 인간으로 보고, 인간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덧씌워진 ‘미로의 권위’가 근거 없다는 것을 폭로한다는 측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잠깐의 시간을 같이할 뿐이다.

보르헤스의 미로는 혼란이 아니다. 보르헤스의 미로는 풍요로움이다. 풍요로움은 동일한 것의 차이([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시간의 순환과 반복([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시간의 그물망([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무한과 주기성의 인식([바벨의 도서관]), 우연성([바빌로니아의 복권])과 같은 것들에 의하여 강화된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 중요 소재인 거울은 세상을 증식하고, 복제를 통해 세상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보르헤스의 미로는 세상이지만, 구체적으로 인간이 쌓아 올린 체계이며, 그 체계는 책을 구성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의미에서 [바벨의 도서관]은 자체가 미로에 대한 은유다) 그래서 보르헤스가 선택한 ‘문학 비평’을 차용한 쓰기 방법은, (비록 겉으로는 문학비평이지만) 각각의 구성에 대한, 더 확대된 의미로는 세상에 대한 분석, 비판 그리고 관조인 것이다. 그리고 그의 미로는 대칭과 반복/순환으로 구성되는데, 이런 대칭의 이미지는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죽음과 나침반] 속 호텔과 저택의 이미지에서 보이고, 반복과 순환은 [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바벨의 도서관]에서 보인다. 즉 그에게 있어 미로는 기하학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그 속에서 시간은 반복되고, 순환하는 것이다.

단편 [비밀의 기적]은 ‘시간의 정지’라는 기교를 보여주지만, 단편 속 희곡 ‘적들’의 구조는 순환적인 원형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위에서 언급한 보르헤스의 순환/반복의 방식을 변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지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인공 흘라딕이 완성한 수정된 ‘적들’에 대해 ‘미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즉, 문학작품은 작가가 만들어간 체계이고, 그것은 풍부한 환상의 세계이며, 이것은 실제를 반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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