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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Jan 02. 2022

[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기회가 닿아 외국에서 15년 조금 넘게 살았다. 한국 회사의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했고, 아이들은 두바이 유치원을 시작으로 지금은 외국에서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이다. 실제 외국에서 오래 살며 경험한 것은 많지만, 외국 생활의 태도와 관련해서 지금도 어느 정도 확신하는 것은 ‘외국에서 살면 약간의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되고, 익숙해도 물건 값의 바가지는 피할 수 없고, 부당한 세금이나 절차에 대하여 어느 정도 포기하고 그냥 따라야 나의 몸과 정신이 스트레스 덜 받고 편안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이라는 뒷배를 가진 든든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마이너 필링스]의 캐시 박 홍의 입장은 다르다.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그녀에게 한국은 아무런 지지대가 되지 못한다. 그녀는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시인의 길을 가는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뒷배는 미국이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뒷배를 늘 의심할 수밖에 없다. 동질의 한국인 사회에서라면 느껴지기 어려운 ‘정체성’의 문제가 늘 그녀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흑인들과는 또 다른 ‘Minor Feelings’(소수의 감정)은 그녀의 삶을 좌우한다. 단순히 사춘기 시절의 고민뿐 아니라, 그녀의 시 창작 활동에도, 그녀의 가족과 동료에 대한 인식에서, 그녀의 일상의 삶 곳곳에서 이 ‘소수의 감정’은 그녀의 지배적인 감정이 된다.

1980년대 우리나라 학생운동은 NL와 PD로 분화되었다. 내가 아는 한, 이 둘의 구분은 무엇이 보다 근본적인가에 대한 단순한 인식의 차이일 뿐이다. NL 계통은 제국주의의 침략의 여전함을 이야기하고, 우리의 분단 상황이 모든 다른 영역에서 질곡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고, PD는 그보다는 자산가와 노동자의 계급화에 무게를 두어, 사회의 계급투쟁에 보다 근본적인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런 매우 모더니스트 적인 중심 문제의 관점을 캐시 박 홍에게 들이댄다면, 현재 미국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인종의 문제고, 남성과 여성의 문제다.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문제는 인종에 대한 문제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캐시의 시에 대한 혹독한 비평 중 하나는 너무나 ‘정체성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백인 평론가는 젊잖게 좀 더 커다란 문제, 즉 자본주의의 문제 같은 것과 정체성을 결합해 볼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평의 관점은 지독한 인종주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이제 미국은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살아온 아시안들이 이끌어가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말은 백인 문화의 거대한 우산 아래 세워진 한낱 이데올로기일 뿐임을 그녀는 역설한다. 인종의 문제와 성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그녀는 한 발짝도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그녀는 이러한 인종 문제의 해결책으로 아시아계의 연대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아시아인 2.0’을 이야기한다. 아시아 인 1.0은 우리의 부모 세대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백인 사회로 흡수 = 신분상승’을 추구한다. 아시아인 1.0이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자신의 노력이 성공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삶이라면, 아시아인 2.0은 캐시가 제시하는 것으로, 계속 부닥치며, 한 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으로서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아시안끼리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도 포함한다. 사실 아시아 인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의 정체성으로 구성할 수 없다. 심지어 아시아인끼리는 어떤 불편한 관계를 지니기도 한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 동남아 인들에 대한 비하, 일본에 대한 적대감 등) 이런 아시아 인들 간의 불편함은 미국 백인 사회에 대항하여 ‘연대’로 맺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 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세계는 코로나로 약간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 다소 퇴행하고 있지만, 먼 미래에 하나의 지구로 통합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때, 점점 세상이 통합될 때, 지배적인 세력과 균등한 인식과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다양성의 이슈는 분명 크게 떠오를 것이고, 그 속에 인종의 문제는 분명히 중심 주제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인종의 문제는 아주 지엽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작가가 느끼는 것처럼 매우 본질적인 것이다. 점점 우리 한국사회에도 중심 문제로 떠오를 이 인종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도 어느 정도의 내공과 지식을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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