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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Jun 07. 2023

열린 결말과 무제

 영화에서 ‘열린 결말’은 마치 좋은 영화, 예술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생각과 의도를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결말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면에서 어쩌면 민주적으로도 보인다. 관객 개인은 감독이나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또, 평론가들의 일반적인 관점과는 다르게, 영화의 곳곳에서 실마리를 모아 자신만의 생각 체계로 엮어 완전히 다른 결말(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 ‘열린 결말’은 영화가 확장하는 방식이고, 해석의 다양성을 이끈다는 측면에서 영화 판을/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를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미술에서 ‘무제(NO TITLE)’ 역시 관람객들에게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면에서 영화의 ‘열린 결말’과 비슷하다. 작가는 마땅히 ‘이것이다’라고 규정하기 어려워 ‘무제’로 남겨두었을 수도 있지만, 작품의 제목이 ‘무제’가 되는 순간 작품은 다양한 해석과 의미의 날개를 달고 작품의 주위를 선회한다. 

‘열린 결말과 무제’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작품 주위로 포섭한다는 측면에서 민주적이다. 데리다는 콘텐츠는 발표되는 순간 작가의 손을 떠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해석 확장의 가능성이 모든 해설자에게 동등한 수준의 권위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정치적이다. 특히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무거운 공기로 작용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작권자(작가)와 유명 해석자(비평가 집단)에게 상당한 양의 해석에 대한 권위가 배분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순진한 개인의 다양한 해석은 결국 이들의 권위에 포섭되고, 이들의 판단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그들의 것으로 포함되거나 버려진다. (버려진다기보다는 소수의 영역에 그대로 방치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결국 해석의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 개인의 해석이 권위를 얻을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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