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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Oct 25. 202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

망치의 철학자

니체철학의 디오니소스적 긍정 및 가치의 전복에 초점을 두면 니체는 망치의 철학자로 불리고, 힘, 자기 극복 및 초인에 맞추면 의지의 철학자 니체가 된다. 그 외에도 영원 회귀, 도덕의 계보 등등에 초점을 두어 니체의 다른 이미지가 부각되기도 한다. 이는 학문적 분석과 비평을 위한 일반화의 경향성으로 재단된 파편화된 니체의 모습이지만, ‘왜소한’ 나는 현재의 이 글을 위해 일단 파편으로 쪼개진 니체를 쓰고자 한다.

이렇게 그의 파편을 하나하나 모으다 보면, 우리는 두 가지로 그 조각을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한쪽은 파괴의 부분이고, 다른 한쪽은 형성(창조)의 부분이다. 니체는 먼저 인간, 기존 체계, 기존가치등에 대한 파괴를 하고, 그 파괴된 폐허 위에 힘으로 된 의지의 벽돌을 세운다. 이런 파괴-창조의 패턴은 ‘세상의 필연’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전 정부의 부정 위에 서려하고, 후임자는 전임자의 가치를 폄훼하며 그 위에 자신의 체계를 세우고자 한다. 이런 Naïve 하고 Primitive 한 부정과 파괴가 있다면 니체식 파괴는 이런 하찮은 ‘짐승들의 파괴’와는 다르다. 니체의 파괴는 ‘다르게 보기’에 가깝다. ‘다르게 봄’은 그 내부에 파괴적인 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괴는 늘 시원하고 통쾌하다. 니체의 격정적인 글쓰기가 니체의 개인적 성향에 기인한 바 있겠지만, 그 글의 방향성과 내용에 기인한 바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철학자이지만 서사시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 철학의 망치 같은 내용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괴에 익숙하다. 고골은 현실의 지옥을 잘 묘사했지만, 그 위에 세워질 천국의 모습을 형성하는데 애를 먹었다. [신곡]을 읽음에 있어서도 우리는 늘 1편, 지옥 편에 머무르고 만다. 이렇게 늘 대안제시는 어렵다. 

이런 ‘파괴의 저주’는 니체에게도 같은 결로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니체 철학이 오늘에 미치는 영향을 볼 때 망치적인 부분이 더욱 크고, 힘에의 의지로 대표되는 창조적인 부분들은 다소 약해 보인다. 인간 심리의 바닥과 기존 체계의 토대를 긁어낼 수 있도록 고안된 긁음 기능을 장착한 ‘니체의 망치’는 현대의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 문학평론가들 모두의 寶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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