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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Nov 10. 202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

고독, 몰락, 사랑 등

니체는 그의 생각을 펴면서 일상적인 용어를 동원한다. 보통 철학자가 자신의 생각을 펼 때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상의 용어가 동원될 때조차, 철학자 자신은 그 용어에 대한 규정을 명확하고, 날카롭게 벼려서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어떤 용어도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담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니체의 일상어 사용은 그의 거대한 기획 속, 또 다른 전략임을 나는 느낀다. 그래서 그의 기획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철학 책으로 읽기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터질 듯/꿈틀대는 에너지를 포함하는 문학 서적(산문 서사시)으로 취급되기를 바란 듯하다. 사실 철학이든, 문학이든 무엇이 중요한가? 우리 인간이 ‘위버맨쉬’로 가기 위한 서늘한 자극이면 충분할지 모른다. 이런 일상어를 동원한 ‘어버버 스타일’에 대한 설명은 2부 ‘결벽 성향의 인식에 대하여’에 잘 나타나있다. 많은 일상어와 풍성한 문학적인 비유의 사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독서 체험을 변화무쌍한 바다 위를 표류하는 작은 배로 만들어 버린다. 높은 파도에 빌딩 높이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순식간에 해안의 암초 곁으로 밀려나고, 검은 심연으로 내몰리기도 하면서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멀미를 느낀다.

니체의 저작에서 힘, 의지, 영원만큼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나는 ‘고독’에 주목한다. ‘고독’(원어는 모르겠다. 번역에 의존한다) 1부를 시작하며 차라투스트라는 고독에서 나와 번잡한 시장으로 나온다. 그리고 다시 1부 말에서 그는 고독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3부 후반에서 그는 다시 마지막 과업을 위하여 고독에 든다. 그리고 그는 군중에게, 자신을 따라온 벗들에게, 자신을 찾아온 차원 높은 인간들에게 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고독하라고 이야기한다. 차라투스트라에게 고독은 때를 기다리며 ‘힘에의 의지’를 다듬고 수련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마치 화두를 들고 들어가는 참선과 유사하며, 소림사 주방장의 물퍼나르기와 유사한, 비상을 위한 초기 단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철학자)인 니체에게 고독은 단순한 초기 단계라기보다 마지막 순간을 제외한 전체 과정을 의미한다. 고독은 ‘다르게 보기’를 실천하는 과정이고, 기존의 인식과 체계를 끌이 달린 망치로 바닥부터 부수는 과정이며 새로운 가치 창조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인식적 창조의 단계에 해당한다. 이렇게 그에게 올바른 고독은 힘에의 의지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이 고독이 잘못되면(그의 내부를 파고들면) 섞어서 냄새를 풍기거나, 의지의 에테르를 죽이는 싸늘한 관조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고독은 니체에게 올바른 인식의 실천, 창조 과정이다.

또 다른 일상어 ‘몰락’은 힘에의 의지와 마찬가지로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사바세계를 내려오며 인간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것이 긍정의 몰락이다. 자신이 이룬 바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나눠주려는 것이다. 이는 사랑에 기반한 교육적 기획의 긍정적인 측면이다. 반면에 몸을 경멸하는 자는 ‘자신’(몸과 영혼의 완성체)을 경멸하는 것으로, 창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스스로 몰락을 길로 들어선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역시 몰락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자해와 타락의 의미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몰락은 이렇게 양 방향으로 사용되지만, 결국 ‘몰락’은 니체에게 있어 부정적 의미를 가진다. 차라투스트라의 여정과 고민이 계속될수록 긍정의 몰락은 무의미/쓸모없음으로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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