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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Nov 20. 202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7.

신과 인간의 거리

고대에 신은 여기저기에 있었다. 번쩍이는 번개에도, 대장간에도 신이 있었고, 우리네 부뚜막에도, 마을을 흐르는 강에도 신이 살았다. 심지어 아름다움, 순결, 죽음과 같은 관념도 신으로 대접받았다. 신은 우리와 농담도 주고받고, 질투도 하며, 세상의 진탕을 같이 구르는 동지 같은 존재였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신들은 하늘로 올라가 하나가 되었다. 우리 곁의 친근한 존재는 둥실 떠 우리의 머리 위로 고개를 꺾어 바라보거나, 그 발아래 조아리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신의 분리와 이탈은 인간의 그리움과 만나 어떠한 힘, 인력(引力)을 낳았다. 즉, 신의 인간에 대한 동정과 인간의 신에 대한 동경은 서로를 당기는 힘, ‘만유인력의 영(靈)’을 창조한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사랑하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그리움과 짠함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신과 인간의 거리와 힘을 조절하는 장치로 일찌감치 마련되었다. 그래서 아타나시우스에게 예수의 존재는 신이 되어야 했다. 아리우스의 예수는 한쪽만을(인간의 힘) 강조하여 매개자로서 교회의 지위를 잠재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타나시우스는 예수를 더 멀리 하늘로 던져 하늘을 근본의 삼각형으로 이미지화했다. 그리고 그렇게 천년이 흘렀다. 그사이 교회는 스스로 만유인력의 영이 되었다. 신의 동정과 인간의 동경은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파편으로 부서졌고, 단절된 공간에선 부패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연결을 상실한 인간은 점점 동경을 상실하고, 대체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물질 혹은 이성이었다. 종교개혁가들의 교회 정화가 신의 동정과 인간의 동경을 회복하고자 시도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세속적이며, 철학적인 흐름을 불식시킬 수는 없었다. 그것은 종교계의 정치적인 투쟁으로 한정되었고, 인간은 이제 완전히 세속적인 자유를 갖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니체는 신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린다.

신의 인간에 대한 동정은 니체에 의하여 철저히 비난당한다. 이런 동정이 바로 신 스스로를 자살로 몰아간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것이다. 니체는 만유인력의 양방향의 힘에서 한쪽을 지움으로써 한쪽만 남겼다. 그것은 ‘동경’이었다. 이 동경은 여전한 힘으로 꿈틀거리는 역동성을 간직한 욕구이며 힘에의 의지로 작용한다. 니체에게서 동경은 힘이며 의지였고, 그 한 방향으로 분출되는 거대한 폭발력의 힘은 니체의 성찰과 고민 속에서 ‘둥근 고리’로 만들어졌다. 아폴론의 태양의 마차처럼 펄펄 끊는 힘으로 충만한 동경은 마침내 분출의 소모성을 이기고, 거대한 둥근 고리 속에 모아진다. 이렇게 삶은 꿈틀거리며 회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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