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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Nov 29. 2023

[화엄경] 김지견 옮김, 민족사

어려서 믿음에 입문하지 못했고, 비스듬히 꼬아보는 눈의 힘을 길러온 탓에 조그만 선물용 [화엄경] 앞에서도 숨이 턱턱 막힌다. 거대한 구조의 앙상한 뼈다귀는 당위로만 가득하고, 당위의 향연은 나의 내부에서 분별과 의심을 키운다. 

선업과 악업의 기준이 애매한데 어떻게 선업을 쌓으라고 만 얘기할 수 있는가? 묘하고 거대한 화엄의 세계, 불교의 세계 어딘가에 나의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조그만 선물용으로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나의 분별은 조심스럽고, 겸손해져야 한다. 조그만 귀퉁이의 흙더미로 산 전체에 어떤 나무가 자라고, 어떤 동물이 뛰어다니고, 어떤 벌레들이 뒹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천 년 이상 인간의 지력이 집적된 체계는 그 앞에선 중생을 왜소하게 만들고, 결국 믿음을 강요한다. 나의 쓰기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보살의 노력과 끈기로 쓰기의 샘이 넘칠 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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